“솔직히 이건 에너지 낭비죠. 문을 열어 놓으면 어차피 안에서 난방 하나 안 하나 마찬가지잖아요.”
차가운 겨울바람에 한낮 체감온도가 영하 5도까지 떨어진 1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옷가게 앞에서 만난 김모(32)씨는 문을 열고 영업 중인 ‘개문난방’ 상점을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손님을 모으기 위한 마음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에너지 상황을 생각하면 적절하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겨울철 전력사용이 급증하는 기간(전력피크)을 맞아 산업통상자원부가 오는 20일부터 4일간 각 지방자치단체 및 한국에너지공단과 함께 ‘합동 점검반’을 구성해 전국 18개 주요 상권을 대상으로 개문난방 영업을 단속할 예정이다.
단속을 일주일 앞둔 이날 취재진이 명동 일대의 의류·화장품 매장 등 125개 점포를 대상으로 개문난방 실태를 확인한 결과, 절반 이상의 매장(69개)이 문을 열어 놓은 채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일부 매장은 자동문이 설치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문난방 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명동의 한 화장품 로드숍 업주 A씨는 “문을 열어 놓아야 확실히 장사가 잘된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의 단속에 적발될 경우 1회 경고조치 이후 단속 횟수에 따라 최소 15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산업부가 ‘전력피크’에 대비하기 위한 선제조치로 ‘과태료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실제 과태료 부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아 단속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과 같이 산업부의 고시공고가 있어야만 각 지자체가 개문난방 상점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겨울철에는 각 자치구에서 에너지공단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며 “(과태료 부과는) 산업부에서 고시공고를 한 기간만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가 가장 최근 단속을 진행한 건 2016년으로 ‘개문냉방’ 상점을 대상으로 했다. 당시 서울시는 경고 121건에 과태료 부과는 단 2건에 그쳤다.
단속의 대상이 된 업주들은 불경기에 문마저 열어 놓고 장사하지 못하면 가뜩이나 적은 손님의 발걸음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소규모 의류 매장 관리자 B씨는 “우리도 문을 닫고 영업하라는 정부의 지침을 따르고 싶지만 먹고살아야 하니 문을 열지 않을 수 없다”며 “장사가 안 되는데 어쩌겠나. 상인들 입장도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계속되는 개문난방 영업이 에너지 낭비 문제와 함께 기후변화 및 미세먼지 등 환경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반짝 단속’ 대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개문 냉·난방 단속은 소극적인 정책이지만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이마저도 거의 하지 않았다”며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수요관리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직 숙명여대 교수(기후환경융합학과)는 “단속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문을 닫는 걸 생활화할 수 있도록 교육 및 홍보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개문난방을 하는 업체에는 일회성인 과태료보다는 전기요금을 누진해 실질적 부담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진·이종민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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