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보물섬’ 북극을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자원의 보고이자 생태연구의 미개척지인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새로운 항로와 자원 지대가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21세기 중반 무렵 북극해에서 빙산이 완전히 사라져 전 세계 미개발 원유의 25%, 천연가스의 45% 정도가 채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 항로는 기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여정이 10여일 단축될 것으로 예측된다.
북극의 ‘보물’은 예상보다 빨리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28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북극의 빙산은 지구상 다른 지역보다 약 두 배 빠르게 녹고 있다. 북극해 바닥에는 900억배럴의 석유와 47조㎥의 천연가스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지질자원조사국(USGS)은 북극에 ‘불타는 얼음’이라 불리는 미래 에너지자원 메탄하이드레이트도 막대할 뿐 아니라 망간·니켈·금·구리 같은 금속광물도 엄청난 양이 매장돼 있다고 밝혔다. 빙하가 녹으면 상업적 조업과 관광 기회도 확대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북극의 지정학적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북극 인접국뿐만 아니라 주요국들이 북극 선점 경쟁에 나서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8개국이 각각 영유권 주장…누가 차지할까
북극에 진출하려면 북극의 영유권을 가진 나라들의 옵서버 자격을 얻어야 한다. 남극은 어느 누구의 땅도 아닌 ‘자유의 땅’이지만 북극은 8개 국가가 영유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권 내 영토가 있는 국가는 캐나다, 미국, 러시아, 덴마크(그린란드 및 페로 제도),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다.
이들은 모두 자국 해안 200해리까지 접해 있는 북극 바다에서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하고 있다. 유엔이 승인한 국가는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단 두 곳뿐이다. 러시아와 덴마크, 캐나다 등 역시 오랜 기간 북극 해저에 대해 주권을 주장해왔지만 일부 수역이 겹쳐 있어 유엔 승인은 받지 못했다. 더구나 극점 부근 북극해는 아직 어떤 국가도 점유하지 못한 ‘주인 없는 바다’로 남아있다.
북극해 해안선 면적이 가장 넓은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다. 러시아는 북극 일대에 군사적 자산과 능력에서 여러모로 한발 앞서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접근성을 활용해 ‘관문국가’의 역할을 하며 중간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최근 러시아는 중국과 연대해 북극개발을 위한 중국 기업 자본 유치에 적극적이다.
중국도 지난 10년 동안 북극의 새로운 항로 등에 관심을 보였다. 중국의 연구선 ‘쉐룽’(雪龍)은 정기적으로 북극의 미국 대륙붕을 탐사하고 있으며 쇄빙선을 이용한 극지방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북극의 천연자원 채취를 위한 심해 시추 등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극정책 백서를 통해 자국을 ‘근 북극 국가’로 규정하고 ‘빙상 실크로드’를 구축하겠다고 선포했다. 북극도 일대일로의 범위에 포함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두고 미국은 지난해 5월 제17차 북극이사회 각료회의 연설에서 “중국에는 아무 권리가 없다”며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미국은 아직 본격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북극의 통제권이 러시아, 중국 등으로 넘어가면 전략적 우위를 넘겨주는 셈이라 고민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덴마크령인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히는 등 북극에 관심을 보였다.
국제사회는 각국의 북극해 영유권 주장을 정리할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해양 국경 및 영토 분쟁의 해결을 규정하고 대륙붕 해저 광물과 자원의 독점 채굴권을 부여하는 유엔해양법조약이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북극 향한 강대국들의 야심…잠재적 분쟁지역
문제는 북극을 향한 패권 경쟁이 방치되면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북극 이사회는 이 지역의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유일한 기구다. 지속 가능한 개발 및 환경 보호 등 공통 북극 사안에 대한 협력 증진을 위해 8개 북극 국가가 1996년 창설했다. 위도 66도 위쪽에 거주하는 400만여명의 주민을 대표하고 생물다양성 강화, 기후 변화 평가, 지속가능한 개발 추진, 해양 환경 보호 등을 핵심 가치로 한다.
하지만 군사·안보 논의나 문제 해결에 나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 해안경비대 사령관 폴 주쿤프트 제독은 북극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이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의 상황과 이상하리만큼 비슷하다”고 말했다. 북극에서 영토분쟁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전략 전망 분석 보고서도 자원 경쟁이 심화되면 앞으로 수십 년 후 (북극) 지역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몇몇 국가는 북극을 향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북극에서 군사 기지를 늘려가며 주변국에 무력을 과시하고 있다. 군사 기지 6곳, 심수항 16곳, 공군기지 13곳 등 러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북극에 가장 많은 군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 시베리아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 제도에 초음속 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배치해 역내를 사정권에 두고 있고 북극해의 마을 틱시에 첨단 방공 장비를 건설 중이다. 2017년에는 프란츠 요제프 란트 제도에 북극 트레포일이라 불리는 3만6000㎢에 달하는 군사 기지를 공개했으며 신형 북극 미사일 체계인 ‘토르-M2DT’와 ‘판치르-SA’를 선보이기도 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북극해 항로의 통제권을 선점하기 위해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암데르마 공항을 2년 내 현대화하는 등 북극권 4개 공항의 인프라를 2024년까지 대폭 확충하기로 했다. 또 북극해 항로의 핵심 거점이 될 추코트카 페벡항과 야말로네네츠 사베타항 시설을 내년까지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35 북극해 항로 인프라 개발 계획’을 최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승인했다. 전 미 해군태평양사령관 해리 해리스(현 주한미국대사) 제독은 “북극에서 영향력을 구축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미국은 북극권에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는 모습이다. 미 항공모함 해리트루먼은 옛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2018년에 북극권 노르웨이 해역에 진입했다. 북극에서 군사화를 시도하는 러시아와 중국에 항모 전개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알래스카 서남부 알류샨 열도에서는 미 육군 항공단이 비공개 상륙 훈련을 하고 미사일 감시 레이더를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러 쇄빙선 ‘NC50’ 2만5000t급 세계 최대
전문가들은 북극에서 활동하기 위한 필수 자원으로 ‘쇄빙선’을 꼽는다. 지금까지 북극해는 만년빙과 영하 40도를 밑도는 혹한 탓에 개발이 어려웠다. 남극은 대륙인 반면 북극은 연중 얼어 있는 얼음바다다. 얼음의 두께도 2~5m로 평균 1m 정도인 남극에 비해 훨씬 두껍다. 각국이 쇄빙선 확보에 힘쓰는 이유다.
쇄빙선 최강국 러시아는 2026년까지 통합조선공사(USC) 계열의 발틱공장에서 핵추진 쇄빙선 5척을 추가로 건조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총 36척의 쇄빙선 함대를 운용 중이며 이 가운데 16척이 북극 전용이다. 원자력 추진기관을 장착한 세계 최대 2만5000t급 쇄빙선 ‘NC50’(사진)도 갖고 있다.
중국도 북극 항로 개척을 위해 쇄빙선에 명운을 걸고 있다. 중국은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 도입한 1만t급의 연구용 쇄빙선 ‘쉐룽’을 이용해 최근까지 남극을 32차례, 북극을 6차례 탐사했다.
독일은 쇄빙선(폴라르슈테른)이 1척에 불과하지만 연구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2만7000t급의 초대형 ‘폴라르슈테른 2’를 건조 중이며 올해 안에 출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은 한 번에 60일까지 연속 항해가 가능한 1만5000t급 ‘D. 애튼버러경호’를 건조 중이다. 북극 전담 쇄빙선 6척을 보유하고 있는 캐나다 역시 올해 취항을 목표로 일곱 번째 쇄빙선을 건조하고 있다.
일본은 1982년 남극용 쇄빙선 ‘시라세’를 만들어 일찌감치 극지탐사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현재 홋카이도를 북극 항로의 모항으로 지정해 개발하고 같은 이름의 1만2700t급 북극 관측용 쇄빙선을 건조해 북극 탐사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북극용 시라세호는 2021~2022년 취항이 목표다. 한국은 자체적으로 제작한 6950t급 쇄빙선 ‘아라온호’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아라온호는 규모가 작은 데다 1m 이하 두께의 얼음만 깰 수 있어 북극에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남극에서 지낸다. 우리 정부는 북극 탐사를 위해 ‘제2 아라온호’를 건조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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