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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박사’의 일상이 있던 그 학교에 갔다

입력 : 2020-03-24 16:41:15 수정 : 2020-03-24 17: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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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곳에서, 박사의 일상에 많은 사람의 하루가 겹쳤을 것이다
24일 오후 찾은 인천의 한 전문대 캠퍼스. 사진=김동환 기자

 

신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는데도 캠퍼스는 적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다수 강의가 온라인으로 바뀌어서일까. 아니면 최근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긴 사건 때문일까.

 

24일 오후 인천의 한 전문대 캠퍼스를 찾았다.

 

이 학교는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 대화방을 운영한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지난 19일 구속돼 25일 검찰 송치 시 얼굴을 공개하도록 결정된 조주빈(25)씨가 다녔던 곳이다.

 

조씨는 이 학교 신문사에서 편집국장을 지내며, 여러 기사와 칼럼 등을 쓴 것으로도 밝혀졌다. 그 중에는 성폭력 예방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캠퍼스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소곤대며 다가오는 두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뒤를 보며 “n번방인가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한 학생은 거듭 뒤를 쳐다봤고, 다른 학생은 전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방금 본 일을 전했다.

 

두 학생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한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취재진이 서 있었다.

 

수백만명의 청와대 국민청원 서명을 불러올 만큼 워낙 사건이 중대하고, 충격도 컸던 탓에 관련 내용을 담고자 온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예민한 일이고 답하기 싫었던 이유에서인지, 일부 학생은 다가오는 기자에게 손을 내젓거나 쓴 마스크를 내리지 않은 채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취재진은 다소 ‘간소했던’ 기자의 옷차림을 보곤 학생으로 생각한 듯 다가와 자신의 소속을 밝히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살짝 고개 숙이며 신분을 밝힌 뒤, 학생이 아니어서 말할 수 없었던 내용 대신 ‘고생하신다’는 짧은 인사만 건넸다.

 

조씨가 편집국장을 지낸 학교 신문사에 금세 도착했다.

 

건물 밖에서 가만히 안을 쳐다봤다. 문도 열렸고 마음먹으면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안으로 걸음을 옮기지는 않았다.

 

과거 벌어진 일 때문에 이 사건과 상관없는 지금의 재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멀찌감치 떨어져 열린 문으로 드나든 일부 학생을 보고는 자리를 떴다.

 

만약 해당 학교 신문사에 다니는 누군가 이 기사를 본다면, 그리고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기자의 메일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다.

 

조씨가 나온 학교 신문사는 커다란 학생회관 안에 있다.

 

학생들이 간식 먹을 곳도 있고, 노트 등 필요한 물건을 살 곳도 있으며, 앉아 쉴 곳도 있는 학생회관 어딘가에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조씨가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10여분 학생회관을 지켜보는 동안 누군가는 책을 든 채 나왔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과거에도 많은 이의 일상이 조씨의 하루와 겹쳤을 것이다.

 

이 학교 인근에는 재학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졸업생의 추억이 깃든 먹거리 골목이 있다. 낮에도 밤에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이 젊음을 노래하는 곳이다.

 

여기에서 만난 일부 학생은 ‘조씨가 과거 이곳에 있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에 “생각만 해도 화가 난다”고 답했다.

 

이름 공개를 원치 않은 두 학생은 자리를 뜨며 이렇게 말했다.

 

“성인으로서 많이 창피하다. 무거운 처벌이 반드시 내려져야 한다.”

 

“내가 다 부끄럽다. 그런데 어떤 처벌을 받을지는 모르겠다.”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 대화방 이른바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씨(25)의 신상공개 여부를 판가름할 신상공개심의위원회가 열리는 24일, 서울지방경찰청 입구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내부위원 3명, 외부위원 4명(법조인·대학 교수·정신과 의사·심리학자)으로 구성된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조씨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

 

피의자 신상공개에 따른 2차 피해 등 공개 제한 사유를 충분히 검토했으며, 조씨의 범행이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하며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등 매우 악질적이고 반복적이었다는 이유다.

 

범죄가 중대하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히 확보된 만큼, 국민의 알 권리와 동종 범죄의 재범 방지 등 차원에서 조씨의 성명, 나이, 얼굴을 공개할 방침이다.

 

조씨의 얼굴은 검찰에 송치되는 25일 오전에 공개된다.

 

한편, 지난 18일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이날 오후 4시 기준으로 255만여명이 서명했다.

 

조씨의 신상 공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 신상이 공개된 첫 사례다.

 

인천=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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