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27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아 남북 공동협력을 제안한 데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여건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종전 선언’, ‘평화협정체결’ 등 거대 담론으로 구성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비핵화 해법을 둘러싼 북·미 간 이견으로 벽에 막힌 가운데 ‘작지만 현실적인’ 남북 협력의 계기를 마련하고 이를 확장하는 게 현재의 여건상 가장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27일 “판문점 선언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문을 열었지만 그로부터 지난 2년은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한 기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 기간을 “기대와 실망의 반복”, “그때마다 인내하며 더딘 발걸음일지언정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선언 등에 남북 정상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이 속도를 내지 못한 데 대해선 “우리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제적인 제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급상승 국면을 타던 남북관계는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노딜’ 이후 차갑게 식어버렸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현실적인 제약 요인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작은 일이라도 끊임없이 실천해 나가야 한다”며 김정은 위원장과의 신뢰를 돌파의 실마리로 삼았다. 문 대통령은 “나와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신뢰와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평화 경제의 미래를 열어나가겠다”며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남북 협력의 길을 찾아 나서겠다”고 했다. 이 발언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에 선을 그은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생명공동체’라는 틀 안에서 ‘코로나19 공동 대처·협력→가축 전염병과 접경지역 재해 재난→기후환경 변화 공동 대응’ 등으로 협력을 확대해나가자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은 하나의 생명 공동체”라며 “남북 생명 공동체는 평화 공동체로 나아가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과 생명에 대한 ‘비정치적인’ 접근이 평화를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구상인 것이다. 또한 여기엔 코로나19 외에도 그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강원도 산불 등 보건·방역·환경 사안에 대해 남과 북의 공동대처가 시급하단 현실적 판단 역시 가미돼 있다.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남북 모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남북 양쪽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남북의 공동 협력과 대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의 이날 코로나19관련 대북 제안은 대외선언에 그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방역과 일상이 공존해야 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일깨우자는 대내 메시지에도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다. 판문점 선언의 기본 정신도 연대와 협력”이라며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본 가치다. 남과 북이 함께 코로나 극복과 판문점 선언 이행에 속도를 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며, 상생 발전하는 평화 번영의 한반도를 열어가자”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란 얘기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들과 ‘덕분에 챌린지’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덕분에 챌린지’는 SNS에 존경과 자부심을 뜻하는 수어 동작인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드는 모습을 사진·영상으로 올리며 코로나19에 헌신하는 의료진과 국민을 응원하는 캠페인이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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