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전체동의’ 버튼을 눌러 자신도 모르게 지원금을 기부해 이를 취소해달라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12일 온라인 카드사 재난지원금 신청 화면에는 ‘전체동의‘ 버튼이 있고 이를 누르면 자동으로 지원금이 기부가 된다.
애초에 지원금 신청 화면과 지원금 기부 화면을 분리해 만들었다면 됐을텐데 왜 이런일이 발생했을까?
이러한 일이 벌어진데에는 정부가 이러한 지침을 카드사들에게 내려보내 이를 따르게 유도한 배경이 있었다.
이날 카드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신청 절차와 관련한 지침을 각 카드사에 공문을 내려보냈다. 공문의 골자는 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절차를 분리하지말고 같은 화면에 넣으라는 것이었다.
당초 업계는 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화면을 분리하려고 했으나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카드사에 입장에선 정부의 지침을 거스를수는 없었다. 결국 카드사는 전체동의 버튼을 누르게 함으로써 국민들의 지원금 기부를 유도하게 했다.
이 때문에 뒤늦게 자신의 지원금이 기부됐다 것을 인지한 국민들은 카드사에 전화를 걸었고 이 때문에 업무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다만 ‘한 번 기부를 결정하면 취소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원칙이지만, 카드업계는 실수로 기부를 선택한 고객들이 당일 취소할 수 있도록 실무 절차를 마련했다.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가 변심한 고객은 오후 11시 30분 전 카드사 상담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넛지(nudge·팔꿈치로 찌르기)’효과를 유도한 것이라는게 카드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넛지효과란 인간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넛지에는 나쁜 넛지가 있고 좋은 넛지가 있다.
좋은 넛지의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남성용 변기에 파리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있다.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같은 요금서엔 옆집의 요금이나 평균치를 제시하는 것도 넛지의 한 예로꼽힌다.
소비자가 손해를 볼 수 있는 주의사항을 작게 표시하기, 유료 이용을 무료처럼 보이게 하는 유도 방식 등은 넛지를 악용한 예라고 볼 수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대상으로 정부가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카드사에 내려보냈다는 것은 지원금 지급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소비를 활성화하고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취지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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