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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만에 유혈충돌… 팬데믹 시대 G2 갈등에 깨어진 ‘평화’ [뉴스 인사이드]

입력 : 2020-07-11 18:00:00 수정 : 2020-07-11 20: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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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화약고' 中·인도 국경지역 / 中·인도 70년간 국경분쟁 / 양국, 히말라야 고산지대 서로 “우리 땅” / 실질통제선 비무장 원칙 지켜며 상황 관리 / 2020년 5월 라다크서 난투극… 사상자도 발생 / 印, 반중정서 확산… 中제품 불매운동 벌여 / 접경지역 긴장 고조 배경은 / 코로나 대응 실패 트럼프, 연일 中 때리기 / 中 ‘의료 실크로드’로 공격적 외교행보 / ‘편가르기' 양상… 인도, 美와 더 가까워져 / 中, 확전 자제 ‘일대일로 지렛대' 활용할 듯

‘힌디 치니 바이 바이.’(Hindi Chini Bhai Bhai.)

1954년을 즈음해 인도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했다. ‘인도와 중국은 형제’라는 뜻이다. 양국 ‘건국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총리와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은 당시 △영토·주권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등 5대 평화공존 원칙을 담은 ‘판츠실 조약’을 체결했다. 두 신생국은 제국주의에 침탈당한 아픔을 딛고 일어난 동지애를 바탕으로 냉전 시기를 헤쳐나갔다.

밀월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인도는 1959년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또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피신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1962년에는 서부 악사이 친(중국명 아커싸이 친) 국경지대에 인도가 50여개의 초소를 설치한 것이 불씨가 돼 전쟁까지 일어났다. 이후에도 수시로 충돌이 빚어졌으나 ‘불안한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확전을 우려해 실질통제선(LAC) 순찰 병력 비무장 원칙을 지키며 상황을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5월 라다크 지역 판공호수와 갈완계곡 등 히말라야 고산지대 LAC 인근에서 양국군 간 몸싸움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두 나라는 충돌지점 부근에 군사력을 증강하더니 지난달 15일 쇠못이 박힌 몽둥이 등을 이용한 난투극을 벌였다. 인도군 20명이 죽었다. 중국은 사상자 수를 밝히지 않았으나, 관영매체들은 인명 피해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1975년 이후 45년 만의 유혈충돌이었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데다 핵무기까지 가진 두 공룡 국가 간 갈등이 격화할 가능성에 국제사회는 촉각을 기울였다. 양측은 고위급 군사회담 끝에 지난 6일 최전방 분쟁지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일단 큰 고비는 넘긴 모양새다. 하지만 중국중앙(CC)TV가 시사 프로그램에서 ‘인도군이 LAC를 넘어 도발한 증거’라며 인도가 중국 측 지역에 차량운행용 도로, 임시 다리, 헬기 이착륙장 등 인프라시설을 설치한 사진을 공개하는 등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갈등을 확산시킨 근본 원인과 지정학적 배경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팬데믹 시대 G2 격돌과 중·인도 국경분쟁

양국은 전쟁까지 치르고도 여지껏 국경을 획정하지 못한 채 3488㎞에 달하는 LAC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청나라 때의 전통적 경계선을, 인도는 식민지 시절 영국이 정한 경계선을 국경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LAC가 강, 호수, 설원 등으로 이뤄져 경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폭설, 해빙, 낙석 등으로 지형이 변하면 경계 구분이 더욱 어렵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양측 간 긴장 고조의 배경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주목했다. 우한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번진 코로나19가 역설적으로 중국의 외교 공간을 넓혀줘서다. 미국 등 서방세계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처와 경제 회복에 여념이 없는 사이 중국은 공격적 대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에 신음하는 나라에 마스크, 인공호흡기, 의료진을 지원하는 ‘의료 실크로드’로 국제사회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것이 한 예다. 다른 나라보다 사태를 조기에 수습한 중국 체제가 우월하다고 선전하면서 올해 초 코로나19 대확산 과정에서 상처 입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리더십을 회복하려는 노림수도 깔려 있다. FP는 “팬데믹은 대담한 외교를 펼칠 힘을 갖고 있다는 중국 정부의 확신을 강화시켰다”고 분석했다.

미·중 신냉전은 중국의 공세적 외교를 더욱 부채질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정치·경제적 타격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리자 중국은 날카롭게 반응했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밀어붙이는가 하면, 미국의 ‘코로나19 기원론’ 조사 주장에 동조한 호주에는 쇠고기 수입 금지, 호주 여행·유학 자제 권고 등 보복성 조치를 감행했다. 미·중 양국이 국제사회 ‘편 가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양상이다. 시진핑 주석의 육·해상 실크로드 구상 ‘일대일로(一帶一路)’와 미국의 중국 봉쇄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틈바구니에 낀 인도 역시 양자택일의 압박을 더욱 심하게 받기 시작했다. 시암 사란 전 인도 외무장관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최근 국경 분쟁이 “중국이 인도에 대해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더는 제휴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중 갈등에 끼어들면 무역·경제 관계에서 파괴적 일격을 받을 수도 있다”며 인도 측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렇잖아도 인도는 중국의 외교 어젠다에서 비중이 커진 상태였다고 SCMP는 지적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후 힌두 민족주의 색채가 짙어진 인도가 파키스탄과의 힘의 균형을 깨면서 역내 강자로 부상하고 미국과의 거리도 좁혀와서다. 특히 인도는 미국의 G7(주요 7개국) 확대 구상에도 포함됐다. 모디 총리는 “창의적이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접근”이라며 환영했다.

2016년 0월 인도 고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서로 엇갈린 채 참가 정상들과 악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게다가 인도는 2023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 집행이사회 의장국을 맡게 됐다. WHO의 코로나19 기원 조사, 대만의 WHO 옵서버 복귀 등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양국 간 역학구도가 완전히 변화한 것도 유혈분쟁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FP는 “양국은 1988년 이후 경제성장과 안정을 위해 평화를 유지하자는 데 이해관계를 같이 했으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며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인도의 5배가 됐고, 군사비 지출도 4배에 이른다”고 했다. 중국이 인도를 더욱 압박해야 할 이유와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미국 역시 인도·중국 국경문제에 관여하고 싶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화하는 국경분쟁을 중재하거나 조정할 수 있으며, 그럴 의향이 있다고 양측에 알렸다”고 했다.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포스터를 들고 중국에 대한 항의를 표명하는 인도인들. EPA연합뉴스

◆미국과 가까워지는 인도

중·인도 국경분쟁이 중국에 전략적 이해의 문제라면, 인도에는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민족주의적 이슈다. 유혈사태 이후 인도 내에 강력한 반중 정서가 형성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다크 출신 개혁가 소남 왕축이 “총탄(bullet)이 아닌 지갑(wallet)으로 중국을 응징하자”고 촉구한 이후 인도에서는 중국 제품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틱톡 등 중국산 앱을 스마트폰에서 자동으로 찾아 삭제해주는 앱이 인기를 끌었고, 인도 정부는 “인도 주권과 무결성에 해를 끼친다”며 중국산 앱 59개의 사용을 금지했다. 중국 기업의 투자 보류, 5세대(G) 네트워크 구축사업 중국 배제 등 조치도 잇따랐다. 인도 국방부는 이달 들어 3890억루피(약 6조2000억원) 규모의 무기 구매와 미사일 개발 계획을 승인했고, 교전수칙을 바꿔 국경지대에서도 지휘관 재량 하에 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3일 인도 라다크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일에는 모디 총리가 직접 라다크 지역을 깜짝 방문해 “팽창주의 세력은 늘 패배하거나 후퇴한다. 역사가 증명한다”고 했다.

SCMP는 지난주 인도군이 미국·일본·호주 병력과 인도양에서 연합훈련을 했다면서 “육상 유혈사태 이후 인도가 바다에서 중국에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모디 총리는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244주년 독립기념일을 축하합니다”는 트위터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맙습니다. 나의 친구. 미국은 인도를 사랑합니다!”라고 답했다.

중국은 일단 확전을 피하면서 인도와의 국경 문제를 일대일로 구상 관철을 위한 지렛대로 계속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경 충돌 이후 인도는 미국 쪽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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