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최근 ‘대형 2차전지(전기차용 배터리)’ 제조와 관련해 인력 유출과 영업비밀 침해 등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검찰에 고소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진흙탕 고소전’에서 승기를 잡은 LG 측이 다시금 추가 압박 카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14일 검찰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 29일 서울중앙지검에 산업기술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등 위반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고소 건을 영업비밀유출·정보통신범죄전담부인 형사 제12부(부장검사 박현준)에 배당해 사건 검토에 착수했다. LG화학은 “경찰에 고소한 지 1년이 넘어 신속히 사실관계를 규명해 달라는 의견서 개념”이라며 “경찰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의견을 제시할 방법이 없어 고소장 형식을 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국내 경찰에 이어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LG화학은 앞서 지난해 5월 서울지방경찰청에 산업기술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고소했고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사건을 맡아 같은 해 9월 SK이노베이션 서울 본사와 충남 서산 연구소 및 공장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고소인 측 지적에 “국익과 관련된 건이어서 면밀히 살피고 있다”면서 “양측이 서로 법원에 이의제기하고 수사관 교체를 요구하는 등 법률적 권한도 최대한 활용하고 있어 지체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LG 고소 건을 직접 다룰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사안이 엄중하거나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면 검찰이 경찰에 사건 송치를 지휘하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먼저 수사한 쪽에 보내 병합시키는 게 통례다. LG화학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면 조사한 한웅재 전 경주지청장을 지난해 말 전무급으로 영입했다. 검찰을 통해 압박의 고삐를 더 죄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압박이 목적이지, 판을 깨는 것은 아니라고 파악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시기와 방법 면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배터리와 같은 미래 먹거리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국내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삼성·LG·SK그룹 총수와 연쇄 회동하는 등 전례를 찾기 힘든 행보를 시작해 ‘K배터리’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된 참이다. 고소 시점도 정 부회장이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회동을 마친 뒤 최태원 회장과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진 때다.
이번주 문재인정부가 올해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가 예고됐다는 점에서도 이 같은 LG 측 공세는 예상 밖 행보다. 4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이 어렵게 나서서 물꼬를 텄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지 않으냐”며 “구광모 회장의 LG그룹이 공격적으로 변모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무적인 판단에 어려움이 있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양측의 분쟁은 지난해 4월 LG화학이 영업비밀 탈취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미 ITC에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두 회사는 국내와 미국 법원에서 특허침해 등으로 전선을 넓혀가며 분쟁을 지속했고 지난 2월 ITC가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정황 등을 이유로 조기패소 예비판결을 내렸다. 이후 양측은 법무법인을 내세워 합의를 위한 접촉을 진행하고 있다.
조현일∙김청윤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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