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군부에 남중국해에서 미군이 주도하는 합동 군사훈련에 참가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5일 보도했다.
필리핀 국방부는 남중국해에서 고조되는 미·중간 갈등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필리핀 내부에서는 “중국에 대한 충성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SCMP에 따르면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은 지난 4일 “대통령이 우리 해역에서 12마일 이내를 제외한 남중국해에서 실시되는 군사훈련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대통령의 지시는 남중국해역에서 미군이 최근 순찰과 감시를 강화하면서 고조되는 긴장을 차단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두테르테 대통령의 조치는 전통적인 동맹국인 미국과의 거리를 두려는 노력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해군 장교 출신인 안토니오 트릴리언스 전 상원의원은 “미국과 다른 동맹국들에 필리핀이 서필리핀 해에서의 중국의 외교정책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필리핀해는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 서쪽 지역으로 남중국해 동부지역을 가리킨다.
트릴리언스 전 의원은 특히 “두테르테 정부가 중국에 보낸 메시지는 분명한 복종을 의미한다”며 “현재 반중 전선에 포위된 중국에 명백한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취임 이후 미국과 거리를 두고 친중 정책을 펼쳐왔다. 필리핀 싱크탱크인 스트랫트 베이스 ADR 연구소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미군과의 합동훈련을 축소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중국해 내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은 계속 논란으로 이어져 왔다.
필리핀은 2012년 남중국해 내 스카버러암초가 중국과의 분쟁 지역으로 떠오르자,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고, 2016년 7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여전히 남중국해 90% 이상을 자국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
투데르테 대통령은 최근 남중국해를 포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SCMP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연례 국정연설에서 “중국은 이미 그 부동산(남중국해)을 갖고 있다”며 중국과 대립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그의 발언은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굳히기 시도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필리핀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더는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됐다. 취임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던 두테르테 대통령이 완전히 중국 쪽으로 기울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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