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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품 선보여온 1980년대생 두 여성 작가 개인전

입력 : 2020-09-22 23:00:00 수정 : 2020-09-22 20: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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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이미지·동양화법의 조화
“진실의 구조 생각해 볼 기회 제공”
디지털 이미지 활용한 추상회화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서 27일까지
‘전시 공간이 통째로 하나의 캔버스다. 독립적 작품들은 전체의 일부이기도 하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여온 두 1980년대생 여성 작가가 전체와 일부, 거시와 미시를 넘나드는 방식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섬세한 구상을 그려온 이진주 작가와 추상회화를 탐색해온 윤향로 작가다. 정반대의 미술세계에 사는 두 작가의 공통적인 시도가 흥미롭다. 마치 사실의 파편들만 넘쳐나 진실과 실체에 다가가기 어려운, 어지러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예술가들이 각성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한자리에서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잊지 말도록 말이다. 두 전시장을 찾았다.

 

◆존재하지만 숨겨진 ‘일상의 이면’ - 이진주 개인전 ‘사각’

 

진실은 가려져 있고, 쏟아지는 사실의 파편들 속에서 오직 자신의 두 발로 서고 걸으며 진실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예술가들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진주가 그린 발은 투명한 살갗이 여려 보이면서도, 의지에 차 꿈틀대는 모습으로 강해 보인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이진주 개인전 ‘사각 死角(Unperceived)’을 열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14m 길이의 대형 회화 2점이 한 면을 맞대고 양쪽으로 퍼져나간다. 전시 공간 한가운데에 거대한 A자 형태로 작품이 놓여있다. 작가는 박물관 유리관 속에 놓인, 다 펼쳐지지 않은 두루마리 형태 유물에서 궁금증과 호기심을 느꼈던 개인적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긴 두루마리 형태로 캔버스를 만들었다.

패널에 리넨을 감싸고, 리넨에 바탕색을 칠한 뒤, 그 위에 일상 또는 사회 사건과 이슈가 연상되는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그렸다. 갓 태어난 아기의 엉덩이를 때리는 손, 흰 장막, 어느새 커버린 아이들, 흰 장막, 땅에 떨어진 십자가, 또 다른 흰 장막, 그 모든 순간들에 함께하고 있는 이국적이어서 이질적인 야자나무 화분들… 마치 인생의 1막 1장에서부터 마지막 장을 향하듯, 관람객은 작품 속 이미지들이 인도하는 대로 나아가게 된다. 마침내 하나의 모서리에 다다르면 새로 펼쳐지는 두 번째 면의 시작이다. 검붉은 진흙탕처럼 보이는 어두운 물이 시선을 사로잡는 두 번째 면은, 낮이 끝나고 밤이 시작됨을 은유하는 듯하다. 마스크를 한 채 발을 담그고 있는 소년, 스티로폼에 몸을 의지하고 떠서 물속에 얼굴과 손을 박고 무언가 애타게 찾는 엄마 등 물을 매개로 이어진 이미지들은 우리 삶과 사회의 모든 사건들이 보이지 않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려는 시도로 읽힌다.

‘사각’ 전시장 전경

이외에도 작품은 관람객이 정면에서 볼 수 없는 A자 구조의 안쪽, 허리를 굽혀 조심스레 들어가야 하는 전시장 구석 작고 어두운 방,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천장 아래 바로 죽은 공간 등에 철저히 숨겨 있다. 작가는 전시공간 전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삼고 곳곳에 단지 이미지를 배치하는 것으로 여기며 작품을 배치했다고 한다. 정연우 큐레이터는 “이미지를 한번에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든 구조로 관람객은 작품을 따라 움직이며,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필연적 사각을 깨닫게 되고, 진실의 구조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현대적 이미지와 동양화법의 조화, ‘허망한 수사들’ 등 새까만 배경의 ‘블랙 시리즈’를 선보이기 위해 직접 더욱 어두운 검정색 물감을 만든 정성, 고도의 정교함이 감탄을 자아낸다. 내년 2월14일까지.

 

◆화가·여성·엄마 연결 ‘3색 자화상’ - 윤향로 개인전 ‘캔버스들’

 

세련된 레터링, 에어브러시로 희미하고 부드럽게 표현된 색감, 그 위에 그어진 낙서. ‘도대체 무엇의 일부일까?’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작은 0호짜리부터 1호, 2호로 커지며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는 조각난 캔버스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캔버스들’은 디지털 이미지를 활용해 추상회화를 선보여온 윤향로 작가의 개인전이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 커지는 캔버스들은 하얀 여백에 진회색빛 문자만 담겨있거나 코발트 블루의 푸른빛이 전면에 물들어 있기도 하다. 제각각 자기만의 조형미를 충분히 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이색적인 풍경은 작품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시장 안에 놓인 작품들을 멀리서 한눈에 담아볼 때다. 전시장 전체를 조화롭게 채운 캔버스들은 신기하게도 한 작품의 왼쪽이 또 다른 작품의 오른쪽이 되고, 한 작품의 모서리가 또 다른 작품의 중심이 되면서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 비밀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낸 이유를 알고 나면, 작품들은 더욱 흥미롭다.

윤향로 ‘캔버스들’ 전시 전경. 뒤쪽 벽면에 걸린 작품의 일부분이 또 다른 한 작품이 되어 앞쪽 벽면에 걸려 있는 모습.

작가는 먼저 전시 공간인 학고재 본관 내부 벽면 전체에 미국의 2세대 추상표현주의 화가 헬렌 프랑켄탈러의 전시도록 페이지들을 입혔다. ‘시네마 4D’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디지털 매핑이다. 헬렌 프랑켄탈러에 대한 기록들로 도배된 전시공간의 이미지를 오려내 캔버스에 입히면서 하나의 거대한 그림들이 쪼개졌던 것이다.

 

작가는 여기에 캔버스마다 에어브러시로 결혼식에 자신이 입었던 드레스의 주름을 표현하며 채색했다. 그 위에 가장 선명하게 그어진 선들은 마치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벽에 그은 것과 비슷한, 오일바로 캔버스 위에 그린 낙서다.

 

결국 이 캔버스들은 윤향로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작품활동에서 참고가 됐던 자신의 윗 세대 작가에 대한 오마주를 첫 번째 레이어로 깔고, 기혼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드레스 주름을 표현한 두 번째 레이어에 담았다. 과거 혹은 오랜 역사를 가진 희미한 두 레이어와 대비되는 가장 선명한, 그래서 가장 현재적이고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세 번째 레이어는 어린 자녀의 낙서에서 영감을 받은 것. 캔버스 위에 층위를 만들고 화가이자 여성, 엄마라는 정체성을 순서대로 입혀 자기만의 독특한 자화상을 만들어낸 셈이다. 의도를 알고 나면, 잘리고 오려진 의미를 파악하길 포기했던 문자들 중에서 ‘painting’(그림), ‘canvas’(캔버스), ‘conceptual’(추상적인), ‘she’(그녀) 등 회화와 여성에 관련된 문자들이 읽히기 시작한다. 추상화가의 자기표현과 그것을 관람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들이 흥미롭다. 27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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