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공무원 A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만행과 관련 북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냉각된 남북관계가 한층 더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북한의 이번 만행과 관련해 정확한 사실 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면서도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군은 구조 등 대응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합동참모본부의 설명에 따르면 피살된 A씨는 목포 소재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8급) 공무원으로 실종 당일 어업지도선에서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동승 선원들은 점심시간이던 21일 오전 11시 30분쯤 A씨가 보이지 않자 선내와 인근 해상을 수색했지만 선상에서 신발만 발견했다고 신고했다. A씨가 실종된 위치는 소연평도 남방 1.2해리(2.2㎞)해상이다. NLL에서 12~14㎞ 떨어져 있다. 이날 수온은 21~23도였다.
이에 같은 날 오후 1시50분부터 해경·해군·해수부 선박 20척과 해경 항공기 2대가 정밀 수색을 벌였으나 A씨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수색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22일 오후 3시30분쯤 A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북한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수상사업소 선박이 황해도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A씨로 추정되는 인물과 접촉하는 장면이 우리 군 감시망에 포착됐다.
이후 북한 선박은 A씨를 해상에 그대로 둔 채로 월북 경위 등을 물었고 북한은 돌연 단속정을 현장으로 보내 약 6시간 만인 오후 9시40분쯤 A씨에게 사격을 가했다. 이후 오후 10시11분쯤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
이번 사태와 관련 군 관계자는 24일 “바로 사살하고 불태울 것이라 상상 못했다”며 “북한이 그렇게까지 나가리라 예상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도 북한이 우리 국민을 몇 시간 뒤 사살할 것이라 판단했다면 가만 안 있었을 것”이라며 “예상치 못하게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너머 북한 지역 인근에서 군사작전을 펼치기 어려웠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와대도 이 사안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손을 쓰지 못한 정황이 드러났다.
군 관계자는 “(국방)장관님께서 실종 당일부터 실종사항을 알고 있었다”며 “그 다음날 불빛도 보이고 하는 상황도 (장관이) 다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도 그 시간에 보고됐다”며 “장관에게 보고하면서 위기관리센터에도 (보고)됐다”고 밝혔다.
당국은 북측 경계병이 외국으로부터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접경지역 방역 지침에 따라 A씨에게 총격을 하고 화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북한군이 남측의 비무장 민간인을 잔인하게 사살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부는 북한의 이런 행위를 ‘만행’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하며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날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은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소연평도 실종자)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이러한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23일 오후 4시 45분쯤 유엔사를 통해 북측에 대북 전통문을 통해 실종 사실 통보하고 이에 관련한 답변을 요구했으나 이날 현재까지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군은 이번 상황을 미 당국과도 긴밀히 공유했다.
통일부는 해당 건과 관련해 북측과 연락할 수단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는 24일 정오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개최하고 “북한군의 이런 행위는 국제규범과 인도주의에 반(反)한 행동으로 강력히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주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북한군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저항 의사도 없는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북한은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는 한편,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며 “반인륜적 행위를 사과하고 이런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는 서해 5도를 비롯한 남북접경 지역에서의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국민들의 안전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며 앞으로 우리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 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임을 천명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오후 비공개로 국방부의 긴급 보고를 받은 뒤 “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에게 의도적인 총격을 가한 후 시신을 불태운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며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바”라며 “남북 정상 간 합의한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기대하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북한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다”면서 “정부는 관련 사실을 신속하고 소상하게 국민께 설명해 드리고 군은 북한과 인접한 경계에서 우리 국민이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강력한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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