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받은 ‘밴 플리트상’ 수상 소감에서 한국전쟁 당시 한미 양국이 겪었던 ‘고난’과 ‘희생’을 언급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던 중국 누리꾼들이 하루 만에 잠잠해지는 모양새다. 주요 외신들이 중국 누리꾼들의 행태를 꼬집은 데다 한국 내에서도 반발이 이어지자 중국 외교부가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서면서다. 과도한 민족주의로 망신살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논란의 시발점이 된 민족주의 성향의 중국 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한국전쟁이 한미)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는 수상 소감이 중국 누리꾼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도했던 기사를 13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기사는 중국 누리꾼들이 BTS의 수상 소감에 “국가 존엄을 건드리면 용서를 못 한다”, “BTS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 채 전쟁에서 희생된 중국 군인을 존중하지 않고 중국을 모욕하고 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한 바 있다. 중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 등에서도 더는 자극적인 반응들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앞서 BTS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은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에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밴 플리트상은 한미 간 정치·경제·문화·예술 분야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단체에 주는 상이다. BTS의 수상 소감이 알려지자 중국 누리꾼들이 분개하고 나섰다.
주요 외신들은 이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BTS는) 공공연한 도발보다는 진심 어린 포용성으로 잘 알려진 인기 보이 밴드이고, 그것(BTS의 수상 소감)은 악의 없는 말 같았다”며 “하지만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지체 없이 (BTS를) 공격하는 글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방송은 중국 내 반대 의견도 소개했다. “RM의 발언으로 인한 중국 BTS 팬층의 반발 규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일부는 웨이보에서 이목을 끌지 않게 조용히 있자고 서로 요청하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RM의 발언이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트위터에서 BTS를 옹호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에선 이번 일로 반중 정서가 고조되는 모습이다. 중국 누리꾼들은 2016년엔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한 인터넷 방송에서대만 국기를 흔든 것을 두고 거센 비난을 쏟아낸 바 있다. 올해 8월에는 가수 이효리가 한 TV 예능에서 부캐(부캐릭터) 이름을 짓던 중 “‘마오’ 어떤 것 같냐”고 물었다가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 주석을 연상케 한다며 항의하는 중국 누리꾼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에 한류의 상징으로 떠오른 BTS마저 중국 누리꾼의 타깃이 되자 국내에서는 “차이나치”(중국+나치) 등의 맹비판이 나오고 있다. 해외의 BTS 팬들도 중국 누리꾼들의 반응에 부정적인 시각을 잇따라 드러내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중국 외교부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이번 논란에 대해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향하고 우호를 도모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하며 함께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환구시보의 기사가 삭제되고, BTS의 팬클럽인 ’아미’ 탈퇴와 관련 상품에 대한 불매 운동 조짐까지 보인 웨이보 등도 한층 잠잠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연합뉴스에 “중국 당국이 BTS와 관련해 한중 간 문제가 커지는 걸 원치 않아 여론 잠재우기에 나선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일로 중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이 앞다퉈 BTS 관련 내용을 삭제하기도 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한국 기업들의 ‘BTS 거리두기’를 두고 “삼성을 포함한 몇몇 유명 브랜드가 명백히 BTS와 거리를 두고 있다”며 “이번 논란은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에서 대형 업체들 앞에 정치적 지뢰가 깔려있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기업의 반응을 선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면서 “성공의 정도는 다양했다”고 보도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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