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이후 20년 넘게 집행 안 이뤄져
동력 약화로 주축세력 세대교체 미흡
문장식 목사 “사형제는 제도적인 살인
얼마나 비인간적 행위인지 깨우쳐야”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 기념관에 개신교, 불교, 원불교의 명망 높은 원로 종교인들이 한데 모인 것은 사실상 명맥이 끊어졌던 우리나라 사형폐지운동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함이었다. 종교를 초월해 원로들이 뭉친 것은 분명 반길 만한 일이지만 여러 여건상 그 앞길은 그리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그들 앞에 놓인 장애물들
이날 ‘한국사형폐지운동범종교연합’으로 뭉친 원로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우리나라 사형폐지운동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60번 넘는 사형집행 입회로 널리 알려진 개신교 문장식 목사를 비롯해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인 진관 스님,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초대회장인 이상혁 변호사, 여·야 의원 155명의 서명을 받은 사형폐지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정대철 전 의원 등은 1980∼90년대 초창기 사형폐지운동 때부터 활발히 활동해 온 인물들이다.
이들의 풍부한 경험과 연륜, 각계로 뻗어있는 인적 네트워크는 분명 큰 자산이다. 문제는 30여년 동안 주축 멤버의 면면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1935년생으로 올해 85세인 문 목사와 이 변호사를 비롯해 진관 스님, 정 전 의원 등 대부분 인사가 70∼80대의 고령이어서 60대인 최창수 홍보국장이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할 정도다.
이처럼 세대교체가 큰 폭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1997년 12월30일 이후 20년 넘게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한몫한다. 매년 수차례씩 사형집행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접하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대중의 관심도나 운동의 동력은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사형폐지운동이 시민운동 본류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명박정부의 사형집행 시도와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 결정이 나란히 있었던 2010년 정도가 그나마 대중의 이목이 쏠린 마지막 해로 평가된다.
이런 분위기는 사형폐지론자 입장에선 악재라 할 만하다. 말하자면 사형제의 잔인함은 희석되고 범죄피해의 공포만 농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생명의 존엄성’ 등 다소 원론적인 측면만 부각되어 온 점도 운동의 외연이 넓어지지 못한 이유로 지목된다.
물론 일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출신인 점을 들어 “이번 정부에서 사형제가 폐지될 것”이라 강하게 기대하고 있으나 한편에선 “이제 임기말로 접어드는데 굳이 모험을 하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부터 쭉 국가 차원의 사형 모라토리엄(집행 중단) 선언을 추진해 왔으나 여태껏 ‘결단’은 없었다.
◆“생명 존엄 지키는 불씨 이어갈 것”
이번에 모인 종교인들 역시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팔을 걷은 것은 사형폐지운동을 후대에 넘겨주고, 인간 존엄성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수호 의지를 우리 사회에 남겨놓기 위해서다. 문 목사는 “사형제의 본질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제도살인”이라며 “이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일인지를 우리 사회가 어서 깨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사형 폐지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인사들이 현 정부 실세란 점은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다. 이 변호사는 국회에 사형폐지 특별법을 촉구하면서 “2016년 열린 ‘사형폐지의 날’ 기념식장에서 정세균 국회의장(현 국무총리),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현 법무부 장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현 국정원장)이 사형제 폐지를 약속했다”며 “이들의 약속이 실행되도록 모두가 분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7(합헌)대 2(위헌)’(1996년)에서 ‘5대 4’(2010년)로 사뭇 달라진 기조를 보인 헌재도 기대감을 키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천주교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을 계속 심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 차례 합헌 결정 이후 위헌 결정이 내려진 간통죄나 양심적 병역거부처럼 그동안 헌재 결정이 국민여론을 거스르는 것도 많았다는 점, 과거에 비해 헌재의 진보색이 한층 강해졌다는 점 등에서 위헌 결정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창수 한국사형폐지운동범종교연합 홍보국장은 “단시간에 이뤄질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회와 헌재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갈 것”이라며 “세대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있으며 목회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사단법인화 등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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