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문제 아닌 지자체 중심 접근
다부처 협력시스템 통해 해결 필요
최근 2030 여성 정신건강 위험신호
사회적 책임 강화한 법 개정 시급”
“자살 예방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많은 사람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보고,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해결하는 거죠.”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만난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코로나19 대응 모범 사례로 꼽혀온 ‘3T(진단·Test, 역학조사·Trace, 환자관리·Treat)’ 모델이 자살 예방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센터장은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이 마비된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압도적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빠르게 발견하고, 자가격리 생활을 지원·관리하고, 증상의 정도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제공한다”면서 “자살 고위험군을 빠르게 발견하고, 지역사회 자원을 투입하고, 필요한 지원을 연계한다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살 예방에는 (적용)되지 않는 시스템이 코로나19엔 가능한 이유는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때문”이라며 “자살 예방 문제는 담당 기관도 부족하고, 자살예방센터 등의 수도 적고,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공무원이 아니기에 신분이 불안정한 부분 등 여러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도 자살 문제를 다부처 협력 시스템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게 백 센터장의 생각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적 자살 예방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은 자살 위기자 한 사람의 문제를 여러 부처가 유기적으로 대응한다. 예컨대 경제적 어려움 해결을 위해 저리로 대출을 지원하는 경제 지원팀, 파산 신청을 돕는 법적 지원팀, 신체·정신 건강 치료를 지원하는 팀, 외로움 등 정서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사회 비영리단체(NGO) 등의 협력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최근 눈에 띄는 위험 신호는 20∼30대 젊은 여성들의 극단적 선택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잠정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6월 20∼30대 여성의 극단적 선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 늘었다. 백 센터장은 “지금까지는 코로나19로 인한 양육 부담 증가, 서비스업 등 대면 일자리 감소로 인한 실업, 2030 여성이 기대하는 평등한 젠더 역할을 사회가 따라오지 못하는 데서 오는 커다란 스트레스 등을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아직은 잠정치이기 때문에 이후 정확한 통계 분석을 통해 2030 여성 중에서도 특히 누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전화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이 익숙한 젊은 세대를 위해 SNS 상담을 늘리는 등 현실의 벽에 절망하는 여성들을 빠르게 발견해 구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백 센터장은 자살 문제를 개인과 가족이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볼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선 죽고 싶단 사람을 경찰이 발견하면 집으로 돌려보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깜짝 놀란다”면서 “미국에서는 일단 정신건강전문가가 위험도를 판단해 3일까지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한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이 높은 사람이라도 치료 결정권이 본인이나 가족에게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로 인해 안타까운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센터장 취임 이전에는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 등을 맡으며 자살 예방에 힘써온 그는 동대문구정신건강복지센터장으로 일하면서 동대문구의 자살률이 서울시 3위에서 22위로 낮아지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백 센터장은 “당시 구청장님이 매달 자살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모든 공무원이 자살 예방교육을 받고 자살 취약계층과 일대일 결연을 하도록 하고, 자살 예방을 위한 협력 체계가 잘 운영됐다”면서 “지자체장이 자살을 줄이겠다고 공약한 곳은 대부분 극단적 선택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센터장은 모두가 자살 예방에 관심을 갖고,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꼭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3명은 가족이나 지인의 자살 사망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국민 30%가 자살 유가족이라 할 수 있다”며 “남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이어 “스스로 삶을 등진 이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아픈’ 사람들이다. 혹시 저 사람이 위험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하고 다가가는 한 사람이 있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절망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혼자 참지 말고 꼭 1577-0199(정신건강상담전화)나 1393(자살예방상담전화)으로 전화해 힘든 상황을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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