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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스트레스·욕구 불만이 폭식 불러
마음의 허기 채워주는 식사로 치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에게 흔히 하는 질문들이 있다. “기분이 어떠세요? 스트레스를 느꼈던 일이 있었나요? 잘 주무세요?” 같은 것이다. 또 하나 빠지지 않고 물어 보는 질문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식욕은 어떠세요?”다.

우울해지면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심하면 몸무게가 줄어든다. 체중이 5% 이상 감소하면 유의미한 우울증상 중 하나로 간주한다. 우울증에 빠지면 의욕과 흥미가 사라지니 식욕도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겠지만, 그 반대 양상도 흔하다. 식욕이 증가하고 폭식하는 환자도 있다. 부정적인 기분 때문에 괴롭다고 하면서 평소보다 오히려 더 많이 먹으니 주변 사람들은 ‘진짜 우울증이 맞나?’ 하며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주요 우울장애의 15∼30%를 차지하는 ‘비정형 우울증’(Atypical depression)은 많이 먹고 많이 자는 게 특징이다. 그러니 신체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 식욕 변화가 생겼다면 우울증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한다.

온종일 직장에서 시달린 날에는 유난히 치킨이 먹고 싶어지는 경험, 누구나 해 봤을 거다. 스트레스 받으면 매운 떡볶이나 달달한 초콜릿이 당긴다는 이들도 많다. ‘정서적 허기’(Emotional hunger)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식욕이 솟구치고, 맵고 달고 짠 맛의 자극적 음식이 생각나고,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은 안 생기고 죄책감이 느껴지면 정서적 허기에 휘둘린 것이다. 감정적 불만족에서 비롯된 식욕과 정상적인 허기를 구분해야 한다. 브로콜리 테스트를 해보면 알 수 있다. 음식이 막 당길 때 스스로에게 “나는 브로콜리라도 먹을 것인가?”라고 물어서 “그렇다”라고 하면 정상적인 식욕을 느끼는 것이고 “아니요”라면 정서적 허기다.

업무가 밀려서 점심 식사를 거르고 저녁마저 간식으로 대충 때우고 야근했다면 늦은 밤 집에 와서 심한 허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밤마다 식욕 억제가 안 되고 폭식한다면 ‘야식 증후군’(Night eating syndrome)을 의심해야 한다. 하루 전체 칼로리의 25% 이상을 저녁 이후에 섭취하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자다 깨서 음식을 먹는다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환자는 아침에는 식욕이 없고 밤만 되면 먹고 싶은 충동이 커진다. 낮 동안 일하느라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풀 길이 막혔다고 하면서 욕구 불만을 음식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늘었다. 야식 증후군도 감정적 불만족에서 비롯된다. 밤에 폭식하면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위식도 역류질환이 생긴다. 비만 환자의 10% 정도가 야식 증후군을 갖고 있다. 심신에 해롭다는 것을 잘 아는데도 야식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무조건 안 먹겠다!”고 하기보다는 바나나, 사과즙, 견과류로 허기를 살살 달래는 게 좋다. 오이, 당근, 토마토처럼 몸에 부담 주지 않으면서 포만감을 주는 채소를 많이 먹는 것이 좋다. ‘마음챙김 식사’(Mindful eating)를 하자. 음식을 먹고 있는 지금 현재에 집중한다. 미각뿐 아니라 시각과 후각을 총동원해서 요리가 제공하는 아주 작은 감각도 놓치지 않고 음미한다. “식욕 조절이 안 돼요!”라는 이들을 상담해보면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고 일상에서 재미를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먹는 것만 참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을 찾아 그것에 몰두하며 감동을 느껴야 활활 타오르는 식욕도 누그러든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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