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못 받는 대학원생 연구원들
실험실 사고로 전신 89% 3도 화상
산재 보상 안 돼 치료비 마련 갈등
국내 연구실 중 대학 소속은 8.3%
사고로 다친 사람은 62%나 차지
학생연구원 신분 전국 118만명 추산
‘산재 가입’ 법개정안 국회서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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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화학과에 진학했다고 즐거워했는데 이제는 회복해도 복학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이제는 자기가 (공부를) 안 하겠다고….”
임덕기씨는 딸의 사고를 회상하다 말끝을 흐렸다. 그의 딸 수영(27·가명)씨는 대학원생이던 지난해 12월27일 실험실에서 화학 시료를 폐기하던 중 폭발사고를 당했다. 언론에도 많이 나왔던 ‘경북대 실험실 사고’다. 이 사고로 대학원생 3명과 학부생 1명이 다쳤는데, 수영씨가 가장 크게 다쳤다. 그는 전신의 89%에 3도 화상(피부 신경까지 손상된 화상)을 입었다.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수영씨는 여전히 병원에 있다. 사고 직후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던 채로 생사를 넘나들던 수영씨는 7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치료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미 10여 차례의 피부와 근육 이식 수술뿐 아니라 흉부외과, 정형외과 등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술을 받았다. 당시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로 정신과 진료도 받고 있다. 화학 공부와 실험이 즐겁다던 딸은 이제 ‘불’을 무서워한다.
딸의 고통을 지켜보는 임씨의 마음도 끊어질 듯 아프다. 그는 “아내가 24시간 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교대도 못 한다”며 “1년 6개월 정도 더 입원하면서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병원은 치료가 끝나더라도 전신의 50%가량은 중증장애가 남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딸의 상태를 전하던 임씨의 목소리에서 눈물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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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사고만 생각해도 억장이 무너지지만, 임씨는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학교와도 싸움 중이기 때문이다. 사고 후 치료비용을 전액 부담하겠다던 경북대는 올해 3월 이후 4억원이 넘는 입원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다른 피해 가족들과 학교를 방문하고 항의했지만, 학교는 ‘관련 규정이 없다. 경찰 수사를 지켜보자’고 말을 바꿨다. 이후 ‘학생들의 책임이 없다’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왔지만 내부 절차를 이유로 치료비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다. 국정감사 등에서 논란이 되자 경북대는 이달 24일에야 4억7000만원을 우선 지급했다. 임씨가 국감장까지 쫓아다니며 싸운 결과였다. 앞으로 발생할 치료비에 대해서는 여전히 결정된 것이 없다. 그동안 공식적인 사과조차 없었다.
임씨는 수영씨 같은 학생 연구원(대학원생)들은 학생도, 대학 직원도 아닌 ‘붕 떠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다쳤는데 인간적인 사과 한마디도 없다. 학교는 ‘어떻게 하면 돈이 적게 나갈까’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라의 미래가 청년이라고 말만 하지 말고, 청년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목숨을 담보로 살지 않도록 해달라.” 국감장에 참고인으로 섰던 그가 했던 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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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보상비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치료비만 보장해달라는 건데… 앞으로 치료비는 또 어떻게 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수영씨처럼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학생 연구원은 전국적으로 10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정규직 연구원과 동일한 연구를 수행하지만, 법률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고 발생 시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을 수 없는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들도 산업재해보상을 받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구실 안전사고 70%는 대학에서 발생…“실효성 없는 안전교육”
대학 연구실은 특히 안전사고가 잦은 곳으로 꼽힌다. 2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전체 연구실은 4075곳으로, 이 중 대학 연구실은 8.3%(338개)에 그친다. 그러나 지난해 전체 연구실에서 다친 사람(238명) 중 대학 연구실에서 다친 이는 62.2%나 된다. 전체의 8%를 차지하는 곳에서 환자의 60%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 5년간 국내 전체 연구실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842건 중 대학에서 일어난 사고는 69.6%(586건)에 달한다. 올해에는 8월까지 대학 연구실에서 77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화재나 폭발뿐 아니라 생물·의학 분야 연구실에서는 바이러스 및 세균 감염 등의 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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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구실은 대학원생들이 통상 졸업을 하면서 연구실을 떠나는 만큼 근속연수가 다른 연구기관보다 짧아 꾸준한 안전관리가 쉽지 않다. 또 다른 연구기관보다 근무 시간이 길고 안전 장비 환경 등이 열악한 것도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대학 총장이나 지도교수 등이 대학원생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최근 대학원생노조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대학원생 5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1%인 235명은 ‘학내 업무를 수행하면서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한 대학원생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교육은 원론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안전관리도 장학사가 초등학교 방문하는 것처럼 짜고 치는 수준”이라며 “어떤 시료가 위험하고, 사고 나면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같은 실질적인 내용의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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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인정 못 받는 학생 연구원…“대학원생의 노동자성 인정하라”
이처럼 학생 연구원들은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사고가 나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 과기부가 지난해 내놓은 ‘연구실 안전관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 연구원 등 대학 연구활동종사자 중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된 비율은 0.3%에 그쳤다. 99.7%는 민간에서 제공하는 안전보험에 가입돼 있다. 전체 연구기관 종사자의 91.3%가 산재보험에 가입한 것과 대조적이다. 산재보험과 연구실 안전보험은 상해에 대한 보상 규모에서 차이가 있다. 치료비 전액을 지급하는 산재보험과 달리 연구활동종사자 보험은 최대 5000만원까지만 보상받을 수 있다. 수영씨 등 경북대 사고 피해자들 역시 산재보험이 아닌 안전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이들이 산재보험 가입자였다면 대학 측과 치료비 지급을 둘러싼 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학생 연구원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법적으로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국가연구개발사업 등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이들을 노동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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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연구원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부터 나왔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에서도 대학원생의 산재보험 가입을 허용하거나 산재 범위에 연구실 안전사고를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 3건이 발의됐지만 현재 계류된 상태다. 전국대학원생노조는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지난 10월6일부터 국회 앞에서 무기한 농성 중이다. 신정욱 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은 “학생 연구원은 제도권 밖에서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해왔다”며 “사회안전망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개정안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대학 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약 118만명인 학생 연구원을 산재보험에 가입시키려면 매년 약 1867억원의 보험료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비용의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관련 법안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전혜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연구실 사고는 대학만의 책임이 아니고 연구 관행을 방치한 정부와 사회, 국회도 책임이 있다”며 “중대 사고로부터 우수한 미래 과학·기술 인재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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