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중 양부모 비율 0.3% 그쳐
입양 문제로 부각시키는 건 잘못
전통 벗어나 국가·사회 개입 필요
아동보호 전문가 양성 가장 급해
“문제의 본질은 입양이 아닌 학대입니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은 19일 ‘정인이 사건’을 비롯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입양’이 부각되는 점을 우려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아동학대 사건에서 가해자가 양부모나 계부모란 점이 강조되면서 문제의 초점이 엉뚱한 곳에 맞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아동학대 사건은 학대 문제로 다뤄야지, 입양가정이라 학대가 이뤄졌다는 식으로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아동학대 가해자 중 상당수는 친부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아동학대 가해자 중 72%는 친부모고, 양부모는 0.3%, 계부모는 3%에 불과하다. 오 이사장은 “아동학대가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에도 가해자의 약 90%가 친부모”라고 말했다. 부모가 친부모인지 양부모인지가 아동학대의 중요 변수는 아니라는 의미다. 오 이사장은 아동학대 사건을 사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입양이 위축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가정이 더 이상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아이가 위험도 높은 친부모로부터 분리됐을 때 이후 최선의 상황은 좋은 가정에 입양돼 새 가정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며 “아동학대 사건에서 양부모라는 게 부각돼 입양이 위축되면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의 선택지가 좁아진다”고 설명했다.
오 이사장은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육을 개별 가정의 문제로 치부해온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국가와 사회의 개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아동학대 고위험군에 ‘20대 부모’도 포함시킨다. 양육 경험이 없어 미숙하고 양육 도움이나 교육 기회를 얻기 어려운 젊은 부모가 학대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도 고립되고 미숙한 부모가 학대 가해자가 될 우려가 있다”며 “사회가 미숙한 부모들에게 양육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적절히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육 사회화의 일환으로 친권 제한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오 이사장은 “원가정 보호 원칙이 중요하지만 분리 외에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한국은 친권 개념이 너무 강해 제한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친권 제한을 포함해 우리나라에서 가정에 국가와 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 이사장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경우 정부나 사회가 개입해 친권을 제한하는 조처를 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우리 사회는 친권이 강하게 보장돼 정부나 민간단체 등의 개입이 더 어렵다. 그는 “바로 강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민간단체와 정부기관, 경찰, 지자체 등에서 망설이고 지체하는 사이 학대행위는 아주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양성도 강조했다. 오 이사장은 아동학대 조사관과 전문가를 ‘의사’에 비유했다. 그는 “병이 생겼을 때 수술을 하는 게 나을지, 경과를 지켜보는 게 나을지 등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며 “아동학대에 관해서도 의사 표현이 어려운 아동을 대신해 판단을 내려줄 전문 인력이 절실한데 지금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아동보호 관련 예산은 GDP의 0.2%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7분의 1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아동보호 관련 전문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 유엔 대사, 유엔 장애인권리협약당사국회의 의장, 유엔 국제연합경제사회이사회 의장 등을 거치며 38년간 외교 분야에서 활약한 오 이사장은 4년 전인 2017년 외교계를 떠났다. 이후 지난 2018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으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아동 인권 분야에 몸담게 된 이유에 대해 오 이사장은 “아동을 보호하는 게 곧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의 주류세대는 50년 뒤면 세계를 지금 아동인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무대 뒤로 나가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아동일 때 제대로 보호하고 교육받게 해 인류의 앞날을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갈 지도자로 길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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