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부지 9%… 생산 급감 없지만
석유회사들 “시작 불과” 바짝 긴장
“유가 인상 땐 물가 상승도 부를 것”
에너지협회선 무효화 투쟁 선언
뉴멕시코주 등은 직접 타격 예상
트럼프, 에너지 생산 확대와 대조
환경단체 “기후 재난 늦춰” 찬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 연방 소유의 토지·수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다. ‘2050년 넷제로’ 공약 이행에 시동이 걸렸다. 넷제로 정책이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다시 흡수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7일 이런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첫날 미 내무부는 부처 고위관계자가 승인하지 않는 한 신규 시추허가 발급과 연방 토지 임대를 60일간 중지하도록 명령했다. 새 행정명령은 중지기간을 60일이 아닌 무기한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내에서 석유·가스 시추는 대부분 주나 민간 소유지에서 진행되고, 미 연방이 소유한 시추 부지는 9%에 불과해 당장 생산량이 급감하는 것은 아니다. 또 대다수 석유 회사들이 이미 계약한 부지가 많기 때문에 연방 공유지 시추가 막혀도 대안이 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한 정부 보고서를 인용해 “2014∼2019년 발급된 시추허가 중 절반 정도에서만 시추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행정명령은 바이든 정부의 넷제로 정책 신호탄인 셈이어서 석유 회사들은 잔뜩 긴장하는 눈치다. 오클라호마 석유업협회의 브룩 시몬스 회장은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아무리 그래도 물리학과 화학, 수요공급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석유와 가스 가격이 올라가면 가정의 난방비, 소비자 물가, 연료비가 모두 치솟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웨스턴 에너지협회의 캐슬린 스가마 회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방 소유지 시추 중단 명령에 대해 법정에서 무효화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2019년 미 연방 토지 내 석유 생산량은 9억5430만배럴로 2016년에 비해 28% 올랐다. 지난해 정부가 석유 시추로 거둬들인 수익은 60억달러(약 6조6000억원)에 이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방 소유 토지에서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적극 추진한 결과다. 그는 알래스카의 미국 최대 야생보호구역인 ‘북극국립야생보호구역’(ANWR)에서도 석유 개발을 허용했다. 연방 공유지에서 화석연료를 시추하고 연소하는 과정에서 매년 5억5000만t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한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7억여t)에 비견되는 양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남긴 흔적은 바이든 정부 행정명령에 따라 지워지게 됐다. 행정명령은 의회 승인 없이 바로 효력을 발휘한다.
이번 조치로 줄어드는 생산량이 적다고 해도 추후 연방 부지 아래 송유관 매설을 금지하는 데까지 확대된다면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 연방 공유지가 5380만 에이커(약 22만㎢)에 달하는 뉴멕시코주와 와이오밍주는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환경단체들은 바이든 정부의 이 행정명령을 기후변화의 재난을 늦추는 데 꼭 필요한 대담하고 긴급한 대책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석유와 가스 시추 중단운동을 주도했던 키란 서클링 생물다양성센터 사무총장은 “바이든 정부의 결정은 제대로만 시행되면 프래킹기법과 시추작업을 전면 폐지시킬 수 있는 정책”이라며 환영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 밖에도 △2030년까지 연방 토지의 30% 보존 △모든 정책 수립 시 과학적 의사결정 방법 도입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 출범 △기후변화 문제의 국가안보 우선과제로의 격상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구의 날인 4월22일 기후 정상회의 주최를 곧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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