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나서 사태 수습해야” 지적 나와
사의 수용 땐 1년전 법·검 관계 회귀
사의 접어도 갈등 근본적 해결 안돼
휴가로 일단 주말까지 파국은 피해
朴장관 사실상 유감표명… 회동 시사
비공식적으론 신 수석에 사과한 듯
문재인 대통령이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사의 파문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신 수석 간 갈등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할 경우 문 대통령이 이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양측이 조율 중인 과정에서 박 장관의 인사안에 힘을 실었다. 결과적으로 ‘신 수석 사의’ 파문을 촉발하면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이른바 ‘추·윤 사태’에서도 조기 개입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다 결국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는 자충수를 둔 바 있다. 당시에도 문 대통령은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을 중재하지 않은 채 거의 1년여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사안도 문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 핵심 참모의 이탈이어서다. 결국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추·윤 사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감사원의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감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등 여러 차례 민감한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청와대는 그때마다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가 가지는 파장을 의식해 사안이 정리되면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해 왔지만 항상 그로 인한 정치적 타격은 문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곤 했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다. 박 장관과 신 수석 간 갈등이 표면화하고 신 수석 사의가 공개되면서 문 대통령으로서는 어떤 선택을 해도 이번 사태에 대한 정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문 대통령이 신 수석의 사의를 수용한다면 결국 1년 전 추·윤 사태 당시 법무·검찰 관계로 돌아가는 셈이 된다. 박 장관의 이번 검사장 인사는 이른바 정권보위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여 검사들이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평가 의혹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사태 등 청와대와 여권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막으려고 나선다면 제2의 추·윤 사태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신 수석이 사의를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신 수석의 성향을 감안했을 때 후임자가 정해지면 청와대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 한 법조계 인사는 “신 수석은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파견근무 후 친정인 검찰에 부담을 줄 수 없다며 검찰에 복귀하지 않고 변호사로 남았다”고 전했다. 신 수석은 주변 인사들에게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마음이 떠났다”는 등의 말을 수차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신 수석의 두터운 인연을 생각할 때 문 대통령이 간곡하게 만류한다면 마음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 대통령의 리더십 타격은 불가피하다. 검찰·법무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된 상황이 아니어서다. 언제든지 청와대와 검찰의 대립구도가 다시 불거질 수 있고, 청와대 핵심 민정수석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활한 기능을 회복할지도 불투명하다.
신 수석이 이틀간 휴가를 내면서 이번 주말까지는 일단 당장의 파국은 피한 모양새다. 청와대와 여권은 사건의 파장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4월 7일 재보선을 앞두고 권력 내부갈등이 표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박 장관이 이날 기자들에게 사실상 유감을 표하고 신 수석과 주말 회동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런 여권 내부 분위기를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이번 주말이나 휴일 신 수석과 전격 회동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野 “靑 비정상적 행태가 참모 반란 불러” 與, 청와대판 秋·尹 사태 재연 우려 ‘긴장’
검찰 고위간부 인사 논의에서 배제당한 것으로 드러난 청와대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에 야당은 청와대의 비정상적 행태가 핵심 참모의 반란을 초래했다며 신 수석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다. 여당은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전 청와대판 ‘추미애·윤석열 사태’가 불거질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검찰개혁 기조의 연속성을 위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신 수석의 뜻을 검찰 인사에 반영할 수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회의에서 신 수석 사의 표명과 관련해 “대통령 최측근 핵심의 반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비정상적 일들이 너무 빈발하니 임명된 지 한 달밖에 안 된 핵심 측근인 민정수석이 반기를 들고 사의를 표명하는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또 “미봉책으로 수습해선 안 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오는 26일 청와대를 상대로 하는 국회 운영위원회에 민정수석을 꼭 출석시켜서 경위와 문제가 뭔지 밝힐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선거를 앞두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벌어졌던 ‘추·윤 갈등’이 청와대에서 재연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말을 아꼈다. 다만 김종민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저도 확인차 (청와대 관계자한테) 전화를 해봤다”면서 “인사 문제와 관련해 신 수석과 박 장관 사이에 이견이 있던 건 사실 같다”고 했다. 또 “박 장관이 신임 장관으로 법무부의 연속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결정을 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도 했다. 법무부와 검찰 간 원만한 조율을 하려는 신 수석의 뜻이 검찰 인사에 반영될 경우 추 전 장관 시절 수사지휘권 행사의 적절성은 물론 그간의 검찰개혁 기조를 부정하는 셈이 돼 박 장관으로서는 신 수석의 뜻이 담기지 않은 인사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으려 했으나 이용구 법무차관이 고열이 난다며 불출석해 파행했다. 야당은 이 차관이 택시기사 폭행 관련 질의를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불출석했다며 반발했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에 따르면 이 차관은 회의 시작 30분 전인 이날 오전 9시30분 불출석하겠다고 국회에 일방 통보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코로나19와 관련해 고열이 있다고 해서 불참을 허용했다”고 말했다. 여야는 오는 22일 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다. 이 차관은 신속항원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文정부 민정수석 4인 전원 ‘수난사’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고위인사를 둘러싼 갈등 끝에 임명 40여일 만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새삼 문재인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난사’에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정부 민정수석 모두가 이런저런 구설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민정수석직은 모든 정권에서 요직으로 분류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아온 자리이긴 하지만, 현 정부에서 임명된 수석들은 모두 임기 후 검찰 수사를 받거나 조기 낙마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섰다. “민정수석들이 오히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여권 내에서도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정부의 민정수석은 현재 신 수석을 포함해 총 4명이다. 이 중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이는 조국 전 수석이다. 현 정부 초대 민정수석인 조 전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시작 다음 날 지명되어 약 2년2개월간 일했다. 정부 주요 국정과제인 ‘검찰개혁’의 주역이라고 평가받는 조 전 수석은 재임 기간에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을 무마했다는 의혹으로 현재 재판 중이다. 조 전 수석은 민정수석 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는데 자녀 입시비리 의혹 등에 휘말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여권 간 대립이 조 전 수석 관련 의혹으로부터 시작됐다. 조 전 수석은 관련 의혹을 일절 부인하고 있다.
조 전 수석 후임 수석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언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조 전 수석 후임인 김조원 전 수석은 부동산 문제에 휘말린 끝에 사의를 밝혔다. 김 전 수석은 강남에 아파트 2채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고위 공직자 1주택 보유 권고’에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주택매물을 놓아 ‘매각 시늉’ 논란을 빚었다. 김 전 수석은 결국 아파트를 처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을 그만뒀다.
이어 임명된 김종호 전 수석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 총장 간 정면충돌을 중재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과 넉 달 만에 그만뒀다. 김 전 수석은 충돌에 따른 혼란에 대해 주무 수석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표했었다. 신 수석은 현 정부의 검찰 출신 첫 민정수석으로 김 전 수석 후임으로 임명됐다. 윤 총장과 여권 간 갈등구도를 중재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사의를 표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이도형·배민영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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