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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해진 소년범죄… 도돌이표 찍는 ‘엄벌주의’ 실효성 논란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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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21 14:00:00 수정 : 2021-03-21 20: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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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 존폐 두고 또다시 논쟁

“전과 안 남아 쉽게 범행” 여론
소년범 확 줄었지만 강력범죄 비중 2배↑
형사처벌 면제 만14세 미만→13세 미만
학폭예방 위한 ‘소년법 개정안’ 입법 표류

전문가 “처벌 강화만 능사 아냐”
2009년 소년법 적용연령 1세 줄인 이후
‘성인 수준 처벌’ 만19세 범죄 되레 늘어나
인권위 “범죄 억제 근거 빈약” 개정 반대

피해자 보호·가해자 교화 우선
가정폭력 노출 고립된 아이들 범행 많아
출소 후 재사회화 교육·지원 강화 목청
미성년 피해자 사법적 회복조치도 필요

“제가 친구 입장이 돼 보지 못하고… 때려서 정말 미안해요.”

 

2018년 2월 부산가정법원 소년법정. 또래 친구 A양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렸던 B양이 법정에 나와 피해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가해자는 판사의 요청에 따라 “A야 미안하다. 용서해라”를 열 번 외치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이후 둘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렸고, 재판정에 앉아 있던 어른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B양은 국민적 공분을 샀던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의 가담자 중 한 명이었다. 가해 학생들은 부산의 한 골목에서 A양을 각종 집기로 집단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가해 학생들이 처벌 대신 전과가 남지 않는 보호처분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소년법을 개정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30만명이 동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을 심리한 천종호 부장판사는 처벌보다 학생들 사이의 화해를 강조했다. 오랜 기간 소년범 재판을 담당한 천 판사는 당시 “폭행 피해자와 가해자가 화해하는 모습을 보며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며 “A양이 상처에서 어서 회복돼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A양도 천 판사에게 편지를 보내 화답했다. A양은 “B양이 자존심을 굽히며 무릎 꿇고 울면서 사과하는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지난 2017년 사회적 충격을 안긴 ‘부산 여중생 사건’ 가해자들이 집단 폭행을 하고 있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세계일보 자료사진

10대의 잔혹 범죄가 이어질 때마다 소년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소년범을 가까이서 지켜본 전문가들은 엄벌주의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그보다 소년범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과 피해자의 회복에 초점을 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논란 불거질 때마다 “소년범 엄벌하자”

 

15일 통계청·여성가족부의 ‘2020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전체 소년범죄자(18세 이하)는 6만6142명으로 2009년(11만3022명)보다 41.4%가 줄었다. 하지만 소년범 중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같은 기간 2.8%에서 5.3%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범죄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현행 소년법과 형법에 따르면 ‘형사 미성년자’인 만 14세 미만은 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10~13세는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경우 소년법에 따라 최대 10호 처분(소년원 2년)을 받을 수 있다. 14~18세의 ‘범죄소년’에게는 형사처분이 가능하지만, 소년법이 정한 특례에 따라 완화된 형이 선고된다. 사형이나 무기형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러도 최대 15년의 유기징역까지만 받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아직 성장하는 단계인 아동이나 청소년이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교화를 거쳐 품행이 바뀔 여지가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처벌이나 보호처분으로 건전한 성장을 돕는다는 취지다.

 

반론도 많다. 특히 최근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면서 소년법 폐지나 촉법소년 연령 조정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인과 다를 바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의 처벌을 받는다는 논리에서다. 정부와 국회도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소년법 개정안을 들고나온다. 교육부는 지난해 학교폭력 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연령 10~13세를 10~12세로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2018년 A양 폭행사건이 발생한 뒤 법무부가 발표한 ‘소년비행예방 기본계획’에도 담겼던 내용이다.

 

◆처벌 강화했는데 소년범죄 늘었다

 

그럼에도 소년법 개정이 매번 무산되는 것은 엄벌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크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촉법소년 연령 하향 추진을 발표했던 2018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소년범죄 예방을 위한 실효적 대안이 아니다”며 반대 입장을 냈다. 연령 하향이 청소년 범죄율 경감에 실효성이 있다고 명확히 입증된 적이 없고, 낙인효과로 소년범의 사회화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에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권위는 소년범죄 예방정책은 청소년이 비행에 다시 노출되는 환경을 줄이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도 2003년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 형사 미성년자의 나이를 만 14세로 규정한 형법 9조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처벌을 강화해도 범죄 억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09년 소년법 적용 상한 연령이 ‘만 20세 미만’에서 ‘만 19세 미만’으로 내려오면서 만 19세 청소년은 소년법 적용을 받지 않게 됐으나 만 19세의 범죄는 증가 추세다. 소년법 적용 대상인 18세 이하의 범죄가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법무부 산하 소년보호혁신위원회 위원인 박인숙 변호사(청년 법률사무소)는 “몇 명의 위험한 촉법소년을 처벌하겠다고 대부분 경미한 범행을 저지르는 아이들까지 모두 형사처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과학적으로도 청소년은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위법에 대한 개념이나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도 “인터넷 공간 등에서 촉법소년 제도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일종의 환상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령이거나 당장 출산을 앞둔 피의자에 대한 처분이 달라지는 것처럼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 보호, 가해자 재사회화가 처벌보다 중요”

 

전문가들은 소년범 처벌 강화보다 교육을 통한 재사회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년법강의’라는 책을 낸 현지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보호시설이나 교도소에 더 오래 가두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교육을 받아야 할 시기에 성장의 기회를 박탈한다”며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년범의 재사회화를 위한 지원을 강조했다. 현 변호사는 “같은 환경에 놓인 아이가 스스로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보호처분 종료 이후에도 꾸준히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소년범 보호자에 대한 내실 있는 재교육, 필요한 경우 소년범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재정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인숙 변호사도 “갈 데 없는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 여러 쉼터를 전전해온 아이들을 또 다른 시설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주거지원과 교육과 상담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소년범 중에는 가정 폭력에 시달린 경우가 많았다”며 “소년범죄에 대한 해결책으로 아동학대 예방을 강화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아이만의 책임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한 어른의 책임이기도 하다”며 “다른 아이를 때리고 괴롭히지 않아도, 전교 1등이 아니어도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와 사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소년범죄의 피해자 역시 미성년자이지만, 소년법에 피해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년범죄가 발생했을 때 현행법상 처벌은 국가와 가해자 사이의 일이고,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증인이나 참고인에 불과한 상황이다. 현 변호사는 “소년범 처벌 강화를 외치는 동안 피해 회복을 위한 요구는 가려진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는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원하지만 사법시스템 자체가 가해자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집중되어 있다”며 “피해자는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 보호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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