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객 몰린 조주빈 항소심 법정
이름 노출에 판사 뒤늦게 “가려라”
판·검사 ‘피해자 누설 금지’ 특례법
변호인엔 해당 안 돼… 종종 사고
“제재조항 신설 등 관련법 개정을”
지난달 20일 서울고등법원 417호 대법정. 규모가 큰 법정에 재판을 보러 온 기자들과 방청객이 속속 들어찼다. 이날 법정에선 조주빈을 비롯한 ‘텔레그램 박사방’ 일당의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예정된 증인신문이 시작되기 전 검찰이 재판부에 말을 건넸다. “재판장님, 증인신문 전에 신문사항을 보니 피해자 이름이 그대로 적시된 부분이 있습니다.” 재판장은 “아, 곤란하죠”라며 관련 사항을 점검했다.
그렇게 시작된 증인신문에서 검찰은 다시 한 번 재판부에 이의를 제기했다. “피해자 실명이 자꾸 나와서 피해자 실명이 나오지 않도록….” 이에 재판장은 변호인에게 “가려가면서 하라”고 지시했고, 그때서야 피해자 이름이 가려진 채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처럼 성범죄 관련 형사재판에서 피해자 인적사항이 직접 노출되는 경우가 생기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 재판은 공개주의가 원칙인 만큼 재판 당사자의 부주의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판 관계자들의 인식 개선과 더불어 제도 정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성범죄 관련 형사재판에서 피해자 인적사항이 공개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성범죄 피해자들을 변호해 온 이은의 변호사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피고인 변호인 측의 실수 등으로 피해자 이름이 공개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참고인이나 피고인신문 등을 할 때 피해자 이름을 실명으로 얘기해서 판사님들이 주의를 주는 일이 굉장히 많다”고 전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서혜진 변호사 역시 “어떤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같이 봐야 하는 상황 등에서 피해자 얼굴이나 인적사항이 화면에 송출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막는 제도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대법원 예규 ‘성폭력범죄 등 사건의 심리·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엔 ‘법원,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 그 밖의 소송관계인은 심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주소·성명·나이·직업·학교·용모 그 밖에 피해자를 특정해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 등이 공개되거나 타인에게 누설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기본방침은 마련돼 있는 셈이다. 결국 제도와 방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법정에서의 피해자 인적사항 공개는 2차 가해로 이어질 개연성이 충분하다. 재판은 재판장이 비공개로 전환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누구나 방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판 당사자들의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서혜진 변호사는 “피고인 변호사는 피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피해자를 신경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도 “어쨌든 법정에 있는 당사자로서 피해자 보호에 대해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피해자 보호가 실질적으로 이뤄지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피해자 인적사항 노출을 금지한 대상에 피고인 변호사는 빠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1항이 대표적이다.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성폭력특례법 제24조1항엔 ‘성폭력범죄의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공무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사람’의 피해자 신원 노출을 금지하고 있는데 피고인 변호사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해당 조항에 피고인 변호사도 넣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손해배상 등 입법적으로 제재 방안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정한·이희진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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