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매체 “美 불참 땐 타국도 영향”
정치권도 개최 놓고 벌집 쑤신 듯
“올림픽 지지 美 입장엔 변함 없다”
모테기 외무상 적극 수습 나섰지만
스가 총리 코로나 방역 실패론 커져
미국 정부는 24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유행과 관련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행금지 권고 대상국에 일본을 포함시켰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일본 정부는 “선수단 파견과 무관한 조치”라며 선을 그었다.
미 국무부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에 대한 여행경보 3단계 ‘여행재고’를 4단계 ‘여행금지’ 권고로 격상했다. 국무부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로 일본에 대한 여행 보건경보 4단계를 발령했다”며 “이는 일본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코로나19 상태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국무부 여행경보는 일반적 사전주의(1단계), 강화된 주의(2단계), 여행재고(3단계), 여행금지(4단계)로 나뉜다.
이로써 미국이 자국민의 여행금지 국가로 등재한 나라는 캐나다, 프랑스, 이스라엘, 독일, 멕시코, 러시아, 북한, 이란, 미얀마 등 151개국이 됐다. 한국은 2단계, 중국은 3단계를 유지했다.
미국의 여행금지 권고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개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올림픽 개막일은 7월 23일이다. 일본은 일일 확진자 수가 4000명대까지 늘었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3번째 긴급사태가 발령됐다. 일본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72만2938명, 사망자는 1만2420명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조치가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대회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대회 개최를 실현한다는 일본 정부 결의를 지지하는 미국의 입장에 어떤 변화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판단과 (미국) 선수단 파견은 관련이 없다는 설명을 미국 측에서 받고 있다”고 말했다.
◆CNN “도쿄올림픽 허들 높아져”… 개최 회의론 더욱 확산
일본은 2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미국 정부의 여행금지 권고 조치로 큰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동맹국 미국의 조치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 정권의 코로나19 대응 실패가 국제적으로 부각되면서 도쿄올림픽·패럴림픽 대회 회의론이 더욱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CNN방송은 미국의 조치에 대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최를 위한 허들(장애)이 높아졌다”며 “미국 국무부의 여행경보 상향 조정은 대회 개최에 성가신 징조”라고 보도했다. 도쿄스포츠는 “미국 선수단의 도쿄올림픽 불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나왔다”며 “스포츠 대국인 미국 선수단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게 되면 동조하는 타국 선수단이 이를 따르는 사례도 예상된다”고 했다.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미국의 조치가 모든 일본 방문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대회 개최에는 영향이 없다는 논리로 후폭풍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 대변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도항(渡航·여행) 회피를 권고했지만 필요한 경우의 도항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다”며 “현재 일본에 대해 (미국) 입국제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조치를 도입한다는 구체적 이야기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도 참의원(상원) 외교방위위원회에 출석해 “필요한 경우의 도항은 금지되지 않는다”며 “대회를 실현한다는 일본 정부 결정을 지지한다는 미국의 입장에는 어떤 변화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올림픽·패럴림픽위원회(USOPC)는 미국 정부의 조치와 관련해 성명을 통해 “선수나 스태프에 대한 감염 예방책을 강구하는 외에 일본에 가기 전과 도착한 후에 올림픽 기간에도 검사를 받으므로 미국 선수의 안전한 참가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대회 참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USOPC 성명을 사태 파장을 최소화하는 재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이 도쿄올림픽·패럴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한다면 이번 조치가 대회 자체에 미칠 현실적 영향은 크지 않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東京都), 대회조직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지난 3월 20일 온라인 5자 회의를 열고 해외관중 불수용 방침을 공식 결정해 이번 대회 관람을 위한 일반 외국인의 일본 입국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현실적 영향은 제한적이나 국제사회와 일본에 주는 상징적, 심리적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보고되는 각국의 코로나19 감염상황을 근거로 최근 28일간 신규 감염자 수 합계가 인구 10만명당 100명을 초과하면 가장 높은 여행보건경보 4단계를 발령한다. 4월 26일∼5월 23일 28일간 일본의 감염자 수는 10만명당 120명 수준이어서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이 미국의 기준으로도 심각한 위기 상황임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특히 CDC는 일본에 대해 “백신 접종을 완료한 여행자라도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어 일본으로의 모든 여행을 피해야 한다”고 지적해 일본에 대한 여행금지 권고가 상당 기간 지속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조치를 계기로 일본은 대회 개최를 놓고 다시 벌집을 쑤신 분위기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아즈미 준(安住淳) 국회대책위원장은 “‘백신 접종을 한 사람도 감염 가능성이 있으니까 일본에 가지 말아주세요’ 하는 상황에서 올림픽 개최는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대회 개최 여부를 정치 쟁점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워싱턴·도쿄=정재영·김청중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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