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 지역 특성상 인구감소·고령화
1인가구 비율도 타 지자체보다 높아
주민들 자발적 참여 마을 문제 해결
이웃 돌봄 마을 커뮤니티 공간 조성
지역 특성 따라 동별 프로그램 마련
주민 재능기부·봉사활동으로 운영
취약층 차량정비 ‘나눔 카센터’ 인기
생활 속 인문도시 조성도 본격 추진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구분하는 게 아직도 어려워요.”
지난 10일 광주 동구 학동 마을사랑채에 모인 다문화가정 주부 10여명은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날마다 나오는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배출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 달라고 주문했다. 다문화가정 주부들 옆에 있던 20여명의 이웃 주민들은 또박또박 쓰레기의 종류와 배출 시간 등을 알려줬다. 설명을 들은 다문화가정 주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지에 꼼꼼하게 배출 방법을 적어내려갔다.
학동 마을사랑채는 이날 ‘다동다동문화교류’ 프로그램 시간을 가졌다. 이날은 다문화 여성들의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쓰레기 분리배출에 대한 교육을 했다. 이날 재활용품을 이용해 화분만들기를 하면서 다문화가정 주부들과 이웃 간의 ‘정’을 나눴다.
광주 동구는 민선 7기 들어 관(官) 주도가 아닌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마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방법을 찾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은 각 동마다 민간이 조직하고 주도하는 마을 복지사업인 ‘마을사랑채’다. 또 이웃들이 소통과 화합으로 생활 속 ‘인문정신’을 형성, 확산하는 인문도시 조성이다.
◆소통·나눔·문화 복합공간 ‘마을사랑채’
광주 동구의 마을사랑채는 주민이 운영하는 소통과 나눔, 문화의 복합공간이다. 동구에 마을사랑채가 들어선 데는 원도심과 인구의 특성이 영향을 미쳤다. 동구는 광주의 원도심 지역으로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65세 이상 22%), 1인가구(56%), 사회배려계층(13%)의 비율이 다른 지자체보다 높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단독주거 밀집으로 노후 건축물이 많아 정주여건이 열악한 편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 스스로 이웃을 돕고 돌봐주는 커뮤니티가 필요했다. 2019년 주민총회에서 1위 마을 의제로 ‘주민들의 마을 커뮤니티 공간 조성’이 선정됐다. 마을주민들이 운영협의체를 꾸려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주민들의 재능기부, 봉사활동으로 운영된다.
마을사랑채가 가장 먼저 조성된 곳은 지산2동이다. 2018년 8월 구 동계경로당(149㎡)을 리모델링해 공유부엌과 다목적실, 이야기방을 꾸몄다. 지산2동은 1인가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마을사랑채는 1인가구에 초점을 두고 ‘아침밥상’이라는 특화사업을 벌였다. 홀로 계신 어르신과 청년 1인가구, 맞벌이 가족에게 아침밥상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조리사와 식당 운영자들로 구성된 희망나눔실천단이 마을텃밭 채소와 쌀, 각종 재료 등을 기부받아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또 인근 시장에서 장을 봐 밑반찬과 음식을 장만했다. 2019년 8월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인 지난해 1월까지 매주 한 차례 오전 8시 주민들을 위한 아침식사를 제공했다. 지난해 11월 화요아침밥상을 재개했으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잠정 중단된 상태다.
아침밥상을 자주 이용한 이연례(84)씨는 “이웃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서로 정을 쌓고 상부상조하는 계기가 됐다”며 “코로나19로 중단된 아침밥상이 다시 재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을사랑채는 지역특성에 따라 동마다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운동 무꽃동마을사랑채는 3세대가 한 집에 사는 가구가 많다. 이 때문에 3대가 함께할 수 있는 책정원을 조성하고 3대가 소통하는 토요 마을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산수1동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은 지역이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주택 개·보수와 이·미용 봉사 재능기부에 역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생계에 필요한 자동차를 운행하는 취약계층의 차량을 정비해 주는 재능기부인 ‘나눔의 카센터’가 인기를 얻고 있다.
동구 마을공동체 김민진 팀장은 “마을의 현안을 주민 스스로 찾고 해결하면서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현재 6개동이 마을사랑채를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까지 13개 동에 조성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주민 자치와 참여로 일군 ‘인문 르네상스’
광주 동구는 2018년 8월 인문도시정책과를 신설해 주목을 받았다. 주민생활 속에 인문정신을 확산하는 데 속도를 내기 위해 전국 지자체에서 처음으로 이색적인 과를 신설한 것이다. 동구는 당시 인문도시 7대 선언을 하고 단·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7대 선언은 △주민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도시 △산책하기 좋은 도시 △책읽는 도시 △어르신이 존경받는 도시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도시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는 도시 △이웃 간 담장 없는 도시 등이다.
인문도시는 관(官) 주도가 아닌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인문도시 조성의 매개는 책이다. 주민들이 누구나 접하기 쉬운 책과 연관된 콘텐츠를 매개로 하는 강좌와 체험프로그램 운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책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 위기의 해법과 도시공동체의 운영방식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차별화된 전략이 깔려 있다.
주민들의 인문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마련한 ‘동구 인문대학’의 참여율이 높다.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 12명으로 명예교수단이 구성돼 있다. 동·서양 철학과 역사, 음식문화, 육아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강의를 한다. 인문대학 강좌가 계속되면서 주민들 사이에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주민들은 도시생활문제를 스스로 성찰하고 해결하는 등 주민 역량 향상에 한몫하고 있다.
이처럼 인문대학이 효과를 내자 동구는 지난해 코로나19 시대에도 강의를 중단하지 않았다. 기존 대면 프로그램을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인문 콘텐츠를 온라인상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동구인문 정보공유방을 개설하는 등 인문플랫폼을 구축했다. 인문자원을 발굴해 이야기로 엮은 ‘동구 인문 산책길’이 체험 탐방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서양화가 오지호가와 민족시인 문병란 생가, 이한열 열사 생가 등을 연결하는 인문산책을 조성했다. 주민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탐방하는 인문 관광 프로그램이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