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에 부동산 가격 거품 커져
2021년 가계·기업빚 4226조 추정
1954조 규모 GDP의 2배 넘어
성장률 하락 땐 신용손실 우려
단기적 금융 불안은 줄어들었지만
부동산 가격 하락 등 충격파 올 땐
이자 못 갚는 가계·기업 속출 우려
韓銀 “질서있는 정상화 필요” 강조
조기 금리인상론에 갈수록 무게
자산가격 급등, 과도한 레버리지(차입투자) 등 금융 불균형 상태가 심해지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우리 가계와 기업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한 해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넘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가계와 기업이 빚을 갚지 못해 나타나는 손실인 ‘신용손실’은 최악의 경우 37조1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2021년 상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명목GDP 대비 민간신용(가계와 기업의 빚)의 비율은 1분기 말 216.3%로 지난해 동기대비 15.9%포인트 상승했다. 여기서 연간 명목GDP(지난해 2, 3, 4분기와 올해 1분기의 총합)는 1954조원, 민간신용 연간 추정치는 4226조원이라고 한은 측은 설명했다. 가계와 기업의 연간 빚이 GDP의 2배를 넘었다는 뜻이다.
명목GDP 기준 가계신용과 기업신용의 비율은 각 104.7%, 111.6%로 집계됐다. 1년 사이 9.1%포인트, 6.8%포인트 상승했다. 가계부채 잔액은 1분기 말 현재 1765조원으로 지난해 동기대비 9.5% 불었다. 주택담보대출이 8.5%, 기타대출 등 신용대출은 10.8% 증가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171.5%)도 소득 증가율이 낮은 수준에 머물면서 1년 전보다 11.4%포인트 뛰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주택 관련 자금수요 등으로 가계신용의 높은 증가세가 지속됐고, 가계의 소득여건 개선이 지연되면서 가계의 채무상환 부담도 확대됐다”며 “경기 회복이 차별화되고 금융지원 조치 등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취약가구를 중심으로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금융불균형이 심화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가계의 신용손실은 5조4000억원에서 9조6000억원, 기업의 신용손실은 8조7000억원에서 27조5000억원으로 급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계와 기업의 신용손실을 합친 규모가 24조6000억원에서 37조1000억원으로 급증한다는 뜻이다.
한은이 이날 새롭게 발표한 금융취약성지수(FVI)에 따르면 올해 1분기 FVI는 58.9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41.9)보다 17.0%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한은이 FIV 등을 활용해 실물경제 타격에 대한 실증 분석을 진행한 결과, 현재의 금융 불균형 수준에서는 극단적 경우(10%의 확률) GDP 성장률이 연 -0.75%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금융 불균형이 3년간 더 이어지면, 역시 10%의 확률로 경제성장률이 연간 -2.2%로 낮아질 가능성까지 언급됐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자산시장 전반에 걸쳐 위험선호 성향이 강화된 가운데, 일부 자산 가격은 고평가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국내 금융 불균형이 축적된 상황에서 경제가 대내외 충격을 받으면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간 부채·부동산 등 자산 거품 위험도 금융위기 수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자산가치가 급등하고 가계의 소득보다 빠른 부채 증가 현상과 이자도 못 갚는 취약기업이 늘어나는 등 금융시장의 잠재적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한은은 부동산 등 일부 고평가 자산의 가격 조정 가능성을 경고하며, 금융부문의 ‘질서 있는 정상화’를 강조했다. 기준금리의 인상 필요성을 설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빚투’·‘영끌’에 코로나 이전보다 커진 금융시스템 취약성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상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새롭게 개발·편제된 ‘금융취약성지수(FVI)’다.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가격’과 가계·기업 등의 빚 상황을 분석한 ‘신용축적’, 자본비율 등 ‘금융기관 복원력’을 종합해 대내외 충격 등에 대한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측정하는 지수다. 이 지수가 58.9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41.9) 대비 17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경제 금융시스템의 잠재적 위험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금융취약성지수는 지난해 3분기에 처음으로 50을 돌파한 뒤 4분기에는 53.8로 커졌다.
평가요소별로 보면 자산가격 총지수가 91.9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2분기(93.1) 및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7년 3분기(100)에 근접하게 나타났다.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의 수익추구 성향이 강화된 영향이다. 자산가격지수 중에서도 특히 부동산지수는 100을 기록, 시장이 과열된 것으로 분석됐다.
◆가계·기업 빚 폭증…취약가구 부실위험 경고
신용축적 총지수는 30.3으로 외환위기(100)나 금융위기(73.5)에 비해 훨씬 낮게 나타났다. 부채 자체는 크게 늘었지만, 주가·집값 상승 등으로 자산 건전성이 양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촘촘히 따져보면 안심할 수만은 없다. 가계만 따로 뗀 신용축적은 68.4로 급등한다. 가계 부채는 1분기 말 기준 1765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5% 늘어나 높은 증가세를 지속했다. 명목GDP 대비 가계신용비율은 지난해 3분기 처음 100%를 넘어선 이후 3분기 연속 증가하면서 올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9.1%포인트 오른 104.7%를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이 8.5% 증가한 가운데 기타 대출도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10.8% 늘었다.
특히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1.5%로 전년 동기 대비 11.4%포인트 상승했다. 올 1분기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2.2%, 가계부채 증가율은 9.5%로 소득보다 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가계신용은 주택 관련 자금수요 등으로 높은 증가세가 지속됐다”며 “경기회복이 차별화되고 금융지원 조치 등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취약가구를 중심으로 부실위험이 증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 대출은 1분기 말 기준으로 1402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1% 늘었다. 기업의 부채비율은 차입 증가에도 자본확충 노력 등에 힘입어 2020년 6월 말 81.1%에서 12월 말 77.2%로 하락했지만, 지난해 기업 10곳 중 4곳이 수익으로 이자비용도 내지 못하는 ‘좀비기업’으로 나타나는 등 기업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은은 현재 금융시장에 위기가 도래한 것은 아니라면서도, 지금과 같은 저금리 상황과 위험자산 선호 현상, 민간신용 확대 등 ‘금융불균형’이 계속될 경우 경기 상황에 따라 부동산 가격 조정, 가계·기업 신용 위기 등 경제에 충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전보다 (금융불균형 완화를) 고려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금리 인상 여부와 시기를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견실한 성장세가 지속한다면 그동안 이례적으로 시행됐던 완화적 금융조치는 질서 있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