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종류별로 신용등급 매겨
잡코인 적을수록 높은 점수 부여
최근 거래소 코인 무더기 상폐
실명계좌 발급 점수따기 차원
“가이드라인 내용·기준 공개를”
영·일도 거래 감독 강화 나서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무더기로 코인 상장폐지에 나선 것은 취급 코인 수가 많거나 신용도 낮은 코인 거래가 많을수록 시중은행의 실명계좌발급 심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실에 따르면 은행연합회가 지난 4월 마련한 ‘가상자산 사업자 위험평가 방법론’ 가이드라인은 가상화폐 사업자에 대해 고유위험 평가, 통제위험 평가, 필수요건 점검 등을 거쳐 자금세탁 위험 평가검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 지침이 만들어진 것은 금융당국이 난립해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정리하기 위해 실명인증 계좌 발급이라는 기준만 마련하고, 사실상 거래소에 대한 검증 작업은 ‘자율’이라는 명목 하에 시중은행에 떠넘겼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연합회와 은행들이 명확한 기준을 정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 용역을 받아 ‘공통 평가 지침’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 사업자 고유위험 평가를 위한 체크리스트에는 ‘상품·서비스 위험’과 관련해 가상화폐 신용도, 취급하고 있는 가상화폐 수, 고위험 코인 거래량, 거래소 코인별 거래량, 암호화폐 매매중개 이외에 제공 서비스 등의 지표를 정량 평가하도록 했다. 이는 신용도가 낮은 가상자산을 취급할수록, 거래 가능한 가상자산이 많을수록, 신용도가 낮은 코인의 거래가 많을수록,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인 거래량이 많을수록 위험이 가중된다고 본다는 뜻이다.
코인 종류별로도 신용등급을 매겨놓았다. 가상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AA+ 등급으로 모든 코인 중 신용점수가 가장 높고, 위험 점수는 가장 낮았다. ‘알트코인’ 대장주 이더리움은 AA등급으로 두 번째로 신용점수가 높고, 위험점수는 낮다. 이에 비해 신용등급이 BBB인 코인은 비트코인에 비해 신용 점수가 30점가량 낮다.
최근 업비트, 빗썸을 비롯한 거래대금이 많은 거래소들이 잇따라 ‘코인 정리’에 나선 것도 이런 평가 기준에 대비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잡코인’이 적으면 적을수록 심사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개정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9월24일까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실명인증 계좌발급 제휴 조건을 갖춰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영업이 가능하다.
‘고유위험’ 평가 체크리스트에서는 거래소에서 가상자산 매매 이외에 가상자산을 활용해 제공하는 서비스가 많을수록 위험이 가중된다고 봤다. 거래소가 소액송금, 예치서비스를 운영할 경우 위험 점수가 ‘고(高)’, 마진거래(대출거래)를 취급할 경우 위험 점수가 ‘중(中)’으로 매겨진다. 여기에 국가별 가상자산 거래량, 국가별 고객 수, 업종 고객 수, 고위험 비거주자 고객 수 등의 지표를 정량 평가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거래소의 평판, 사업구조, 금융거래 사고등록 등에 대해 정성 평가를 하도록 했다.
윤 의원은 “최근 잇따른 코인 상장 폐지는 이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자들이나 기존 실명계좌 발급에서 소외되고 있는 대다수 중소 거래소들은 이 가이드라인에서 코인 신용도와 위험도가 어떻게 매겨져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은행연합회는 가이드라인 내용을 공개하고, 어떤 기준에 따라 가상자산이나 거래소 존폐가 결정되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도 가상화폐 거래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한 곳인 ‘유한회사 바이낸스 마켓’에 대한 사실상의 업무중단 명령을 내렸다. FCA는 26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바이낸스 마켓 보도자료를 통해 “FCA의 사전 서면 동의 없이 영국 내에서 어떤 규제대상 업무(regulated activity)도 수행해선 안 된다”며 “바이낸스 그룹의 어떤 기업도 영국에서 규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영국 승인, 등록 또는 라이선스를 보유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일본 금융청 역시 지난 25일 홈페이지에 바이낸스가 일본 당국의 허가 없이 불법으로 영업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미국 법무부와 국세청 직원들이 바이낸스의 자금세탁과 조세범죄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정훈·박영준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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