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안전과 밀접 분야 자치경찰 담당
자치경찰委, 교수·경찰 출신 남성 편중
자치경찰위원장 중립성 담보 미지수
소방본부처럼 본부체제 편성 고려를
예산 배정 없고 인사권한도 어정쩡해
지자체 재정 따라 치안 격차도 우려
업무 분담 놓고 지자체와 조율 난항
초기 갈등·혼란 얼마나 줄여갈지 관건
지난 1일부터 전면 시행된 자치경찰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권력기관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자치경찰제는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줄이고, 지방분권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1945년 경찰 창설 이후 76년 만에 근본적으로 체계가 바뀐 것이다. 제도 시행에 따라 지자체 규모와 특색에 맞는 지역 맞춤형 치안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경찰권력 분산 미흡, 지자체와 경찰의 예산·업무 분담 갈등, 시·도자치경찰위원회(자치경찰위)의 정치적 중립성 의문 등 우려가 일고 있다. 예산 규모에 따라 지자체별 치안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행 초기에 자치단체와 경찰청, 자치경찰위가 혼란과 갈등을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무늬만 자치경찰제’ 비판
자치경찰제는 올 1월부터 시범 운영되다가 이달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국가경찰 사무를 분리해 이 중 생활안전, 교통, 경비,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 시민 안전과 밀접한 분야를 자치경찰이 맡는다. 각 시·도지사 소속의 독립행정기관인 자치경찰위가 자치경찰 사무를 지휘·감독한다. 자치경찰위는 경정급 이하 경찰에 대해 전보·파견·직위해제 등 일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전국 경찰 인력 12만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6만5000여 명이 자치경찰 사무에 투입됐다. 경찰청장은 정보와 보안, 외사·경비 등 국가경찰 사무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살인·상해·사이버 범죄·성범죄 등 수사경찰 사무를 각각 지휘한다.
문제는 별도의 인력과 조직을 갖춘 ‘이원화 모델’이 아닌 국가경찰이 자치경찰의 사무를 맡는 ‘일원화 모델’이라는 점이다. 자치경찰이 국가직 신분을 유지하면서 업무 지휘만 시장·지사 등 단체장으로부터 받는 구조다. 아직 재원이 확보되지 않았고 인사권도 반쪽 행사에 그치는 어정쩡한 제도라 태생적 한계가 뚜렷하다. 정부가 검찰개혁에 골몰하느라 경찰개혁은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당장 예산 확보와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배미란 울산대 법학과 교수는 “일원화 모델에선 자치경찰이 인사 명령에 따라 바로 국가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구조”라며 “시·도자치경찰위의 지휘·명령이 제대로 작동하는 명실상부한 자치경찰제가 정착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경찰권 분산이라는 시행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형사법 전문인 김정철 변호사는 “국가경찰의 수사범위는 제한이 없어 자치경찰의 수사범위라도 결국 국가경찰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게 돼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정부의 경찰개혁 이론을 제공한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안에 비해서도 후퇴한 가장 약한 형태의 자치경찰제 도입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자치경찰위도 소방본부처럼 본부체제로 편성해야 진정한 자치경찰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자치경찰위 ‘경찰·교수 출신 남성’ 편중
자치경찰제의 핵심은 각 시·도자치경찰위원회다. 위원장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시·도의회와 시·도자치경찰위 추천위원회에서 2명을 각각 추천하고, 국가경찰위와 시·도교육감이 1명씩 추천한다. 시·도지사는 1명을 지명한다. 선출직들이 위원 절반 이상을 지명·추천하는 만큼 정치적 중립성 담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원회 구성이 너무 편중된 것도 문제다. 자치경찰위원장 18명을 출신별로 보면 교수가 8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무원(5명), 경찰(3명), 법조인·시민단체(각 1명씩) 순이었다. 자치경찰위원 중 여성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부산·대전·경남·강원은 여성 위원이 한 명도 없다. 자치경찰은 어린이·노인·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안전과 관련한 사무가 많은데 특정 분야와 성별 쏠림이 지나쳐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자치경찰위원장 중립성 논란
부산의 정용환 자치경찰위원장은 지난 4·7 재·보궐선거 때 박형준 부산시장 선거캠프에 몸담았고, 경남의 김현태 위원장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김경수 경남지사의 후원회장을 지냈다. 제주의 김용구 위원장은 도 기획조정실장으로 재직했고, 인천의 이병록 위원장은 박남춘 인천시장과 행정고시 동기다. 이런 특수관계가 영향을 미쳐 자치경찰이 지자체장의 영향력에 휘둘리거나 지역 토호세력과의 유착 등으로 인한 폐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 지방경찰서장은 “선거 등을 앞두면 위원장이 자치단체장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치단체에 대한 경찰의 감시·견제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주민 맞춤형 치안 기대, 예산 지원은 난색
자치경찰제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지역 맞춤형 치안서비스 제공이 꼽힌다. 자치경찰위가 주민 요구를 치안 계획에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어서다. 특히 예산심사 단계가 기존 기획재정부 심사, 국회 심의 등 6단계에서 축소돼 치안서비스 제공 속도가 빨라진다. 범죄율이 지자체장의 평가 요소가 되고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차체장의 치안에 대한 관심은 커지게 마련이다. 전국 18개 시·도자치경찰위는 지역 주민의 눈높이에 맞춘 ‘1호 시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광주는 ‘어린이 교통안전 종합대책’, 부산은 ‘해수욕장 치안 대책’, 경남은 ‘학교까지 안전한 통학로 조성’, 충남은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개소’를 첫 사업으로 내세웠다.
문제는 배정된 예산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자치경찰사무 관련 예산은 국고보조금 형태로 지원된다. 급여 등 용도를 미리 정해 놓은 형태라 자치경찰제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국가경찰이 수행하던 사무를 지방정부에 이양했으나 정부는 예산 지원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도에 수행 경비를 요구하는 경찰과 추가 여력이 없는 시·도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와 방식은 관계 부처 간 그리고 중앙과 지방 간 이견으로 아직 논의 중이다. 유주성 창원대 법학과 교수는 “교부금 일부를 자치경찰 사업으로 돌리거나 과태료·범칙금 등 지역에서 거둬들이는 세외수입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역별 치안 서비스 격차 우려
자치경찰제 시행으로 불거질 문제로 치안 서비스 격차를 꼽는 목소리가 많다. 서울이나 경기와 달리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은 지자체는 치안 서비스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지역의 경우 경찰에게 일은 더 많이 시키면서 대우를 제대로 안 해 주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예산 부족 탓에 치안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초기에는 국가 차원의 재정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치안 양극화’는 자치경찰위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시행 초기 업무분담 혼선 불가피
초기 시행 단계에서 경찰과 지자체 간의 업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국가경찰 사무와 자치경찰 사무를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사무가 중복되거나 나누기 애매한 업무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누구의 지휘를 받아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실종 신고가 접수됐을 때 자치 업무로 볼지, 형사사건인 수사 업무로 볼지를 놓고 혼선이 초래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무를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매뉴얼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선 경찰들은 “자치경찰 사무와 지휘부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하고 있다. 그간 지자체에서 맡았던 노숙인·주취자·행려병자 보호 조치 업무와 공공청사 경비, 지역축제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관리 등을 자치경찰이 일부 떠안게 됐다고 한다. 충북의 한 경찰은 “한 지붕 세 가족이 아니라 세 지붕 한 가족인 격이다. 지휘관만 늘었지 예전하고 시스템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자체에서 넘어오는 자치사무도 일정 부분 경찰과 관련된 업무로 국한하는 방안을 지자체와 조율 중이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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