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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땐 언론자유 외치더니… 與 ‘내로남불’ 언론관

입력 : 2021-08-02 05:00:00 수정 : 2021-08-04 1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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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언론중재법’ 밀어붙이기

대법원, 언론 위축 시도 막은 판결
野시절 민주 “알권리·언론비판 인정”
대선 앞두고 ‘악법’ 강행처리 나서
조만간 상임위 전체회의 열어 처리

“이번 판결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정부정책에 대한 언론의 비판 기능을 인정한 것으로 매우 환영할 만하다.”

 

더불어민주당이 2011년 9월 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크게 환영하며 낸 논평의 일부다. 민주당은 그러면서 “언론의 비판정신을 거세하려고 했던 정부의 시도는 법의 심판을 받은 셈이다”며 이명박정부를 세게 비판했다. 민주당이 논평을 낸 판결은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사건이다. 이명박정부 당시 MBC는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보도를 했다. 이 보도는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나선 이명박정부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만큼 파장이 컸다. 정부는 “허위 사실을 보도했다”며 PD수첩 제작진을 상대로 명예훼손 형사소송과 정정·반론보도 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보도 내용의 허위 여부가 논란이 된 7개 쟁점 중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 △아레사 빈슨의 사인과 광우병 연관성 △한국인 유전자형과 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보도한 부분을 허위 사실로 판단하면서도 제작진 손을 들어줬다. 나머지 쟁점은 사실(1개)과 의견표명(3개)으로 결론냈다.

 

대법원은 “정부나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안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며 PD수첩 보도는 국민의 공적인 관심사로 보고 제작진의 명예훼손 혐의를 무죄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사적인 영역에 대한 보도에서는 언론의 자유보다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공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며 “공직자가 비판적 언론 보도의 대상이 돼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더라도 보도 내용이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경솔한 공격이 아니라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허위 보도 중 ‘한국인이 광우병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이 94%나 된다’고 한 것은 정정보도를 하도록 했다.

이처럼 공인과 공적인 영역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의 비판·감시 기능을 강조한 대법원 판결을 민주당은 야당시절 격하게 환영했다. 하지만 중앙·지방정부 권력과 입법 권력을 장악한 ‘공룡 여당’이 되자 언론 자유에 재갈을 물리고 비판·감시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란 논란을 무릅쓴 채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졸속·강행 처리에 들어갔다. 개정안은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보도에 최대 5배까지 배상액을 명령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포털 등에서 아예 기사를 못 보게 하는 열람차단청구권 등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소지가 다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8월 임시국회’ 강행 처리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반발 속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법안소위를 통과해 전체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민주당은 조만간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고 언론중재법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회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문체위를 포함한 상임위원장 자리를 넘기는 오는 25일 전 법안 처리를 강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날 국회회의록 시스템에 공개된 문체위 법안소위 언론중재법 개정안 심사 속기록에 따르면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관련, 외국 입법 사례를 질의하자 오영우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해외 주요국에서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별도로 규정한 사례는 찾지 못했다”며 사실상 비판적 의견을 개진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박정 소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언론중재법에 대한 여야 주요 주자들의 찬반은 엇갈리고 있다.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이낙연·이재명·정세균 후보 등은 법안 처리 필요성을 두고 일제히 찬성 입장을 냈다. 반면 국민의힘 후보군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입장문을 통해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박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당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개정안은) 언론의 정상적인 취재활동마저 위축시키려는 언론장악법”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해외 주요국에서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별도로 규정한 사례는 찾지 못했다”며 사실상 비판적 의견을 개진했다.

 

◆대법, ‘위축 효과’ 우려해 언론 제재에 신중

 

여야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가짜뉴스 피해 구제법’(민주당)과 ‘언론 재갈법’(국민의힘)이라고 맞서는 형국인데, 우리 법은 언론보도에 대해 명예훼손·손해배상·정정보도 등 다양한 통제장치를 두고 있다. 다만, 대법원은 이런 통제장치가 정치·자본권력 등 유력자가 언론의 입막음 도구로 활용돼 언론의 비판 기능을 축소하고, 결과적으로 언론의 ‘감시견’(watch-dog) 역할까지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이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명예훼손 혐의를 무죄로 판결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당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은 그 평가를 달리해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또 “정부 기관과 국가정책,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도 이를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 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이 PD수첩 보도의 7개 쟁점과 관련한 정정보도청구를 하나만 수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대법관 6명은 어떠한 정정보도도 반대했다. 이들은 “정정보도청구권을 과도하게 인정하는 경우에는 정부정책의 감시·비판, 올바른 여론형성이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수행을 심각하게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나아가 국민이 보고, 듣고, 읽는 이른바 ‘알 권리’의 보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진보적 판결에 앞장섰던 박시환·김지형·전수안 대법관은 “언론보도, 그중에서도 고발성 프로그램에 대하여는 다른 시각에서의 문제 제기, 통용되고 있는 이론과 다른 이론에 근거한 비판·주장 등이 광범위하게 허용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과장이나 오류에 무게를 두어 통상적인 사실 보도와 동일한 수준의 제재나 사후조치를 요구하게 된다면, 결국 고발성 프로그램의 비판·감시 기능을 억제하는 효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의견을 달았다. 언론의 비판·고발성 의혹보도는 더욱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취지다.

 

◆언론중재법, 위축효과 키우는 독소조항 내포해

 

법조계에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대법원 입장과 배치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정정보도청구 표시 강제 제도가 그중 하나로 지적된다. 이 제도는 언론사가 정정보도 청구를 받은 경우 곧바로 해당 기사에 그러한 요청이 있음을 알리게 하는 제도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 시민들은 그 표시를 보면 무조건 문제가 있는 기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기사에 대한 예단을 갖게 함으로써 언론을 통제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사열람차단청구권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기사 삭제’의 효과를 낳는 열람차단은 정정보도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의 제재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의·중과실 추정조항 자체가 너무 광범위해서 과도한 언론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 △계속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를 통해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등에서 고의나 중과실이 있었다고 추정토록 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우리 법체계와 충돌한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민사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사실상 (형사적인) 벌금형의 효과를 갖기 때문에 이중처벌적 요소가 있는데, 심지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는 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여당이 언론 보도를 형사적으로 문제 삼기가 어렵자 영미법에서 인정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대륙법계인 우리 법에 무리하게 끌고 오는 꼼수가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보통 명예훼손 등 형사재판에서는 우리 법원이 언론보도의 공익성을 존중해 쉽게 처벌하지 않으니, 손해배상 제도를 형벌(벌금)제도에 준하게 비튼다는 의미다.

개정안이 ‘왜곡’, ‘악의’ 등 자의적 해석 가능성이 큰 어휘를 남발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판부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추상적인 단어들이라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왜곡’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며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기사 내용을 압축해 붙인 제목도 누군가는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며 명확성 원칙에 위배됨을 짚었다.

 

정작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1인 미디어나 유튜브는 이 법의 규제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도 의구심을 사고 있다. 권력형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가 기성 언론을 통해서 계속 보도되는 데 따른 민주당의 불편한 심사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민주당 입장에선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기성 언론이 권력형 비리를 들춰내는 걸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언론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지금도 법적 소송에 휘말리면 언론사에선 기자 개인이 해결하라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어 기자들의 취재가 위축돼 있는데, 징벌적 손배제가 도입되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5개 언론단체는 최근 “언론에 재갈 물리는 반헌법적 언론중재법 개정 즉각 중단하라”는 공동 성명을 채택하고, 민주당의 개정안 처리 강행 시 헌법소원 등을 통해 저지하기로 했다.


이지안, 이창훈 기자 ea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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