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만인 유학생의 목숨을 앗아간 음주운전 가해자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같이 중형을 선고함에 따라, 음주운전이 만연한 사회에 교훈을 남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원정숙 이관형 최병률 부장판사)는 25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52)씨에게 1심과 같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족은 엄중하고 합당한 처벌만을 바랄 뿐, 형량에 영향을 줄 어떤 금전적 보상이나 사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며 “원심의 양형을 변경할만한 변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김씨는 지난해 11월6일 서울 강남구의 도로에서 술에 취한 채 차를 운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쩡이린(曾以琳·28)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8년이 선고됐다. 이는 검찰이 결심공판에서 구형했던 징역 6년보다 더 높은 것으로 이례적인 판결이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과거 음주운전으로 2차례 처벌받고도 다시 음주운전을 했다”며 “피해자의 유족과 지인들이 강력한 처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의 차가 자동차보험에 가입된 점, 피고인이 현지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 피해를 회복하려 노력한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배경을 설명했다.
김씨는 선고 이튿날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구체적인 항소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1심에서 혐의를 인정하며 선처를 호소했던 것에 비춰볼 때 형량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보인다.
이에 김씨는 지난달 항소심 첫 공판에서 “고인과 유족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낀다”며 “내 어리석은 잘못으로 함께 고통받아야 할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겁다. 다시 한번 가족을 위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김씨의 변호인도 최후 변론에서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범행을 자백하고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반면, 검찰과 유족 측 대리인은 재판부에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대리인은 “유족이 사건 초기부터 합의할 뜻이 없다고 명백히 밝혔는데도 피고인의 배우자가 직접 대만 현지를 찾아갔다”며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이 사고는 유족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청원글을 올리고, 대만 언론에서도 사연이 보도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한편, 피해자의 친구 박선규(30)씨는 이날 재판이 끝난 직후 “재판부가 정확하게 형을 내려주고 항소를 기각한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8년이 엄한 처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친구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며 “윤창호법 취지에 맞게 양형기준을 높여서 음주운전으로 인해 사람이 죽는 것을 막아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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