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 무색한 협치 실종
다수 힘 앞세운 사이비 민주주의
속도보단 방향성부터 돌아봐야
민의의 전당이라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서울 여의도동 1번지에 위치하고 있어 ‘정치1번지’로 불린다. 여의도 전체 면적의 8분의 1에 달하는 부지에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 최대 규모다. 의사당 주변을 24개의 화강암 기둥이 두르고 있고 전면부엔 8개 기둥이 자리 잡고 있다. 본회의장 천장에 달린 전구 수는 365개다. ‘이유’가 있는 숫자다. 24절기 365일 전국 8도 국민만 바라보고 올바른 입법활동을 하라는 의미다. 의사당 지붕 위는 1000톤의 동판 돔으로 돼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싸우지 말고 두루뭉술하게 국민을 살피라는 취지다.
25일 새벽 4시 국회법사위 회의실. 박주민 위원장 직무대리와 더불어민주당 김남국·김영배 의원 등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한 뒤 주먹인사를 나누며 자축했다. 야당은 사라진 ‘그들만의 리그’다. 대화는 사라졌고, 폭주만 난무한다. 2021년 국회의 자화상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주권재민(主權在民)을 발현하는 방법은 다수결이다. 그렇다고 다수결이 ‘절대적’이라는 건 아니다. ‘60대 40’이라는 결과에서 40을 무시할 수는 없다. 힘의 우위를 앞세워 타협과 절충은 ‘나 몰라라’하는 건 사이비 민주주의다.
종착역으로 치닫는 문재인정부와 여당의 입법폭주가 도를 넘고 있다. 다수 의석을 전가의 보도처럼 입법·행정·사법 곳곳에서 마구 휘두르고 있다. 국민의 눈귀를 막을 언론중재법은 가히 막장 수준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언론재갈법’이다. 처벌 대상이나 이유, 요건도 명확하지 않다. 법의 생명인 ‘명확성’과 배치된다. 언론이 피해를 입증하라는 책임 전가 대목에서는 법을 만드는 의원의 자질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언론비판봉쇄법’ ‘조국수호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야당이 딴지를 걸까봐 허둥지둥 심야에 날치기 처리하는 모양새가 궁색하다.
집값은 못 잡고 희망고문만 강요하는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이다. 부동산을 ‘때려잡을 대상’으로 본 데서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입지, 교통, 거주여건, 교육 등 복잡한 시장논리를 무시한 채 ‘집 가진 자’를 적폐로 몰았다. 남은 거라곤 징벌적 세금뿐이다. 규제완화·공급확대는 외면한 채 취득세·양도세만 올렸다. 사고팔지도, 그렇다고 갖고 있기도 힘든 세상이다. ‘4년 26차례 대책’은 기네스감이다. 종부세 개편안은 누더기가 됐다. ‘사사오입’ 논란도 모자라 여당 내 특위 결정도 팽개치고 일방적으로 상위 2% 안을 폐기했다. 고령 은퇴자를 위한 종부세 유예안도 ‘도루묵’이 됐다. 집값 폭등의 주범이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격이다.
소득주도성장(소주성)과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고, 소비 증가를 통해 일자리를 확대하는 선순환을 기대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인건비 상승을 불러와 소상공인의 폐업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알바 일자리’로 국민들의 눈을 속였다. 공공부문 고용 확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민간기업의 일자리를 갉아먹는 부메랑이 됐다. 현실과 괴리된 ‘불공정’에 분노한 청년층의 지지율 하락만 불러왔다. 한때 여당에 압승을 안겨준 ‘K방역’은 ‘백신굼벵이’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믿고 기다려달라’는 정부는 양치기 소년 신세다.
아마추어식 대북 저자세 정책은 목불인견이다. 아쉬운 건 북한인데도 마치 동네 양아치처럼 ‘대북전단’ ‘한미훈련’ 등을 놓고 온갖 생떼를 쓴다. 대통령에게 막말을 쏟아내는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해도 북한은 건드려선 안 될 ‘상전’이다. 운전자를 자처하며 남북정상회담으로 기대감만 키운 게 무색하다.
이유는 자명하다. 5년의 정권 내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증 탓이다. 인지상정이라지만 과유불급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우물가에서 숭늉부터 찾을 순 없다. 거리보다는 방향이 중요한 게 골프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다수라는 힘을 빼고 무리하게 속도를 내기보다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잘못된 정치는 국민 전체를 고통 속으로 내몬다. 그러려면 오만과 독주, 불공정의 틀부터 과감히 깨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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