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참전용사들도 '모하메드 구하기' 나서
미국이 20년간 주둔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하면서 아프간에 남겨진 사람들의 안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13년 전에 조 바이든 대통령 일행을 도운 현지 통역사가 대통령을 상대로 구조 메시지를 보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단독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모하메드로 불리는 이 아프간 통역사는 2008년 2월20일 당시 상원의원이던 바이든 대통령과 존 케리·척 헤이클 의원이 탄 블랙호크 헬기 2기가 눈보라로 아프간 산악지역에 불시착했을 때 그들을 도와 안전 귀환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당시 미 육군의 통역사로 일한 모하메드는 36세였고, 이후에도 미군을 도와 여러 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실명을 거론하지 말라고 당부한 모하메드는 마지막 미군 항공기가 카불을 떠난 직후 WSJ에 전한 메시지에서 “대통령님 저와 가족을 구해주세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적었다.
아내와 자녀 4명을 둔 모하메드는 탈레반의 위협으로부터 은신한 상태이고, 미군이 아프간에서 20년간의 군사작전을 끝냈을 때 뒤쳐진 수많은 아프간 협력자들 가운데 한명이라고 WSJ은 전했다.
이와 관련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철군 완료 이후에 이뤄진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은 아프간의 협력자들을 국외로 빼내는데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고, WSJ 기자가 모하메드의 메시지를 낭독한 직후에는 “당신을 꼭 구출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의 헌신을 존중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모하메드를 잘 아는 미군 관계자들은 그의 활동에 대해 “모하메드는 82 공수 사단과 함께 험비를 타고 인근 산으로 몇시간 동안 돌진해 구조 임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이동한 군인들은 100번 이상의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고, 상황에 따라서는 모하메드에게 무기를 건네주곤 했다고 증언했다. 아프간 협력자보다 동료에 가까웠던 셈이다.
지난 6월 미군 앤드류 틸은 모하메드의 특별 이민비자 신청을 지지하며 “모하메드는 우리 군인과 여성에게 이타적인 봉사를 했다”며 “그의 행동은 더 많은 미국인들이 보여주길 바라는 종류의 것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하메드의 비자 신청은 그가 일하던 방위산업체가 필요한 기록을 분실하면서 중단됐다. 이후 탈레반은 지난달 15일 카불을 점령했고, 모하메드도 다른 수천명과 함께 카불 공항 인근 게이트로 향했지만 미군에 의해 거절당했다고 한다. 미군 측은 당시 “모하메드는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아내와 자녀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고 WSJ은 전했다.
모하메드 구하기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2008년 아프간에 투입된 육군 참전용사 숀 오브라이언은 의원들에게 전화해 “단 한명의 아프간인만 구할 수 있다면 당연히 모하메드여야 한다”고 호소했다고 WSJ은 전했다.
2008년 미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 정책성과를 알리기 위해 이 아프간 헬기 사고와 당시 순방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그는 당시 구출작전이 끝난 지 8개월 뒤 유세장에서 “알카에다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싶다면 오사마 빈 라덴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나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 헬리콥터가 추락했던 곳으로 돌아와라. 그 산 중턱에서 말이다. 어디 있는지 말해줄 수 있다”고 치적으로 내세웠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탄 헬기가 비상착륙한 곳은 바그람 공군기지 남동쪽 약 20마일 지점으로 탈레반 통제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안전지대도 아니었다고 WSJ은 전했다. 헬기가 비상착륙하기 전날 82 공수부대는 약 10마일 떨어진 곳에서 탈레반 반군 24명을 사살했을 정도다.
바이든 대통령이 탄 헬기가 비상착륙한 직후 험비와 대형 SUV 3대와 함께 모하메드는 현장에 도착했다. 모하메드는 상원 의원들이 호송대와 함께 미군 기지로 신속히 이동한 뒤 헬기가 기지로 돌아갈 때까지 추운 날씨에도 30시간 넘게 현장에 머물렀다고 WSJ은 전했다.
현재 은신 중인 모하메드는 WSJ에 전했다.
“저는 제 집을 떠날 수 없어요. 지금 너무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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