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참여 선언 후 반년 만에 다시 홀로서
후보 중심의 실무형 선대위, 2040 청년 실무자에 권한 위임
유승민·홍준표·안철수 회동 추진…선대위 빈공간 채우며 빅텐트 행보
정치 신인 약점 극복, 잃어버린 2030 표심 되찾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울산 회동’으로 손을 잡았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윤 후보는 대선후보 선출 뒤 한 달, 선대위 출범후 한 달 내내 벌어진 인선 갈등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프레임을 둘러싼 공방은 결국 윤 후보와 김 총괄선대위원장·이준석 대표의 선거 주도권을 둘러싼 내부 투쟁에서 비롯됐다. 40%대가 훌쩍 넘던 윤 후보의 지지율은 그사이 20%대 후반으로 주저앉았다.
김 총괄선대위원장이 기습적으로 인적 쇄신을 발표한 지난 3일, 윤 후보는 그날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이틀 동안 고심을 거듭한 윤 후보는 ‘고르디우스 매듭’을 풀듯 ‘전원 사의 수용’으로 김 총괄선대위원장 해촉을 결정했다. 5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예고한 윤 후보는 후보 중심의 실무형 선대위를 꾸리는 방안을 발표한다. 김 총괄선대위원장과의 결별을 결정하기까지 걸린 사흘 동안 윤 후보는 김 총괄선대위원장의 ‘후보 연기(演技)론’을 거부하고 ‘윤석열 다움’을 찾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김종인·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중도 성향, 2030 지지층의 이탈은 윤 후보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쇄신 논의하기로 했는데…기습 발표한 김종인
윤 후보와 김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2일 오·만찬을 함께하며 선대위 쇄신안을 논의했다. 신년 주요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지지율이 오차 범위 밖에서 뒤지는 조사가 대거 나오면서 선거 캠페인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김 총괄선대위원장은 총괄상황본부를 선거대책본부로 바꾸고 후보 비서실의 메시지·일정 기능을 갖고 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에 권성동 사무총장은 6 총괄본부장 사의로 강도 높은 인적 쇄신안을 제안했다. 주말 사이 6 총괄본부장과 김기현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의 사퇴와 2030 청년 표 이탈의 원인으로 지목된 신지예 새시대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의 거취 정리가 맞물리면서 쇄신의 강도가 한층 올라갔다. 윤 후보와 김 총괄선대위원장은 3일 오전에 따로 만나 인적 쇄신의 범위를 두고 논의하기로 약속한 뒤 2일을 넘겼다.
그러나 김 총괄선대위원장은 3일 오전 7시 총괄본부장급 회의에서 선대위 전면 쇄신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오전 9시에 열린 선대위 회의에서 “국민 열망에 부응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미래가 밝지 않다”며 “후보에게 선대위를 전면적으로 재편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 총괄선대위원장은 선제 발표로 선대위 쇄신의 키를 쥐었다. 같은 시각 윤 후보는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 및 증시대동제’ 행사에 참석 중이었다. 윤 후보는 개장식 이후 서울 여의도 당사로 복귀해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김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당사에서 윤 후보를 만난 뒤 기자들과 만나 ‘선대위 개편에 대해 후보가 뭐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사전에 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했다”며 “내가 사전에 의논하지 않았으니까 몰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선의 믿었던 尹, “후보는 연기만 해달라” 사의 표명 번복에 분노
윤 후보는 3일까지만 하더라도 정권교체를 위한다는 김 총괄선대위원장의 선의를 믿었다. 다만 김 총괄선대위원장을 제외한 사의 표명 수용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병준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은 전날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윤 후보는 책임이 큰 사람부터 내라고 했다”며 “실제로 (김 총괄선대위원장이) 사표를 내고 안 내고는 본인 마음이지만 김종인은 사표를 안 냈고 김병준은 사표를 냈다. 후보는 다 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령 정변이 벌어져 대통령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자기 의지에 반한 채 들어왔다면 어떻게 하겠는지 생각해 보라”며 김 총괄선대위원장의 몽니를 저격했다.
선대위는 이날 오후 5시 18분 “국민의힘 중앙선대위는 쇄신을 위해 총괄선대위원장, 상임선대위원장, 공동선대위원장, 총괄본부장을 비롯해 새시대준비위원장까지 모두가 후보에게 일괄하여 사의를 표명했음을 공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가 곧장 “소통을 했는데 김 총괄선대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명확히 표현했다”고 반박했다. 윤 후보와 김 총괄선대위원장이 상의해 나온 공식 공지가 이 대표를 통해 반박되면서 선대위 내부에서는 코너에 몰린 이 대표가 김 총괄선대위원장을 돌려세운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오후에 3시간 가까이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당과 윤 후보 지지율 하락의 원인에 이 대표와 윤 후보의 갈등이 있음을 지적하며 ‘이준석 책임론’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김기현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는 지지율 하락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전원 사퇴를 결정했다. 당직을 맡은 의원들도 전원 당직을 반납해 이 대표를 향한 압박의 수위가 한층 올라갔다. 결국 이양수 수석대변인이 메시지 혼선의 탓이라며 김 총괄선대위원장만 사의 표명이 없었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김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의총에서 “도저히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윤 후보에게)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후보도 태도를 바꿔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演技)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TV조선과 인터뷰에서는 “(선대위에) 총괄본부를 만들어서 후보와 관련한 모든 사안을 직접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김종인호(號)’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구상과 다름없었다.
윤 후보는 김 총괄선대위원장의 ‘후보 연기론’에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대위 내부에서는 윤 후보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매머드 선대위로 김종인·이준석·김한길·김병준 등 보수에서 진보까지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가겠다는 윤 후보의 구상과 달리 서로다른 세력간 충돌과 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서 ‘윤석열 리더십’에 대한 지지자들의 의구심이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여권에서는 ‘상왕 프레임’을 제기하며 윤 후보의 리더십을 공격하고 나섰다. 윤 후보와 이 대표의 갈등을 중재하기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 대표의 손을 드는 김 총괄선대위원장의 행보도 윤 후보 측의 반감을 샀다.
◆‘윤석열 다움’에 초점맞춘 尹, 홍준표·안철수 빅텐트 본격화
윤 후보는 칩거에 들어간 3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선대위 핵심 관계자들과 심야까지 회동하며 선대위 쇄신 방향을 놓고 고심을 이어갔다. ‘김종인·이준석’을 모두 품는 방안부터 두 사람과 모두 결별하는 안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고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괄선대위원장과 이 대표와 결별할 경우 예상되는 리스크까지 보고 받은 윤 후보는 ‘윤석열 다움’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윤 후보는 지난 1일 여의도 대하빌딩에서 열린 선대위 신년인사 및 전체회의에서 “문재인정부를 보면서 오만은 곧 독약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됐다. 어느 순간 우리 자신에게 그런 모습이 있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며 “저부터 바꾸겠다”며 “지금의 위기의식을 변화의 에너지로 바꿔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나부터 바꾸겠다”는 다짐은 지난 6월 처음 정치 참여 선언을 했던 ‘초심’을 향했다. 권력자나 누군가의 그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검찰총장 시절의 광야에서 홀로 버티며 공정과 법치주의를 지켰던 마음가짐으로 남은 선거에 임하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후보 중심의 실무형 선대위는 총괄본부장 겸 비서실장을 제외하고는 현역 의원 기용이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원희룡 정책총괄본부장이 사실상 원톱 총괄본부장을 맡는 방안이 유력한 가운데 6개 총괄본부장 자리를 없애 후보와 실무진 사이의 층층 보고를 단순화한다. 전·현직 의원이 빠진 자리에는 2040 실무자 위주로 채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책본부는 정책위원회 혹은 연구소 형태로 정책 생산에만 집중하게 될 전망이다. 정치개혁 과제 발표 등 밀린 정책 행보도 다시 이어간다.
선대위의 빈공간은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 등을 만나면서 채워나갈 것으로 보인다. 당내 경선 상대였던 유 전 의원과 홍 의원과 만나면서 ‘원팀’을 완성, 이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혹은 국민의당과 합당 등 정권교체를 위한 빅텐트 행보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김 총괄선대위원장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김 총괄선대위원장과 껄끄러운 홍 의원, 안 후보와 윤 후보의 소통에 걸림돌이 사라지게 됐다.
◆尹 홀로 성공할 수 있을까…이준석 관계 회복은?
김 총괄선대위원장과 결별하면서 윤 후보와 이 대표의 관계 재설정은 남은 당내 숙제가 됐다. 윤 후보는 기본적으로 이 대표를 대표로서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가 따로 선거 운동을 하든지 윤 후보를 공개 비판하든지 앞으로의 모든 행보는 이 대표의 정치적 책임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대표가 전력으로 선거 운동에 나서며 당내 재신임을 받을 경우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재결합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6월 29일 홀로 정치에 입문해 반년 만에 다시 홀로 선 윤 후보가 남은 대선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특히 외연 확장에 강점을 갖던 정치 신인 윤 후보의 강점이 반년 만에 사라진 점이 가장 뼈아프다. 윤 후보가 내세웠던 ‘공정과 상식의 회복’ 슬로건은 아내 김건희씨의 학력·경력 부풀리기 의혹, 장모 최은순씨가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와 불법요양병원 운영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상처를 입었다. 남은 60여일 동안 2030과 중도층의 표심을 얻지 못하면 선대위 쇄신이 결정적인 패착이 될 수도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윤석열 다움’ 회복이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지는가에 명운이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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