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과 '여가부 폐지'는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뜨겁게 부상한 키워드다.
2030 젊은 세대, 이 중에서도 '이대남'(20대 남성)이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를 캐스팅보터로 떠오르면서 대선 후보들은 구애 경쟁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이대남 잡기에 '올인'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에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여가부를 오히려 '성평등부'로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등 이대남 논쟁이 여가부 개편을 넘어 젠더 이슈로까지 부상했다.
'여가부 폐지' 논쟁에 본격적인 불씨를 댕긴 것은 윤 후보였다.
윤 후보는 이달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별다른 설명 없이 올렸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해 경선 과정에서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한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으나 여가부 폐지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또 여가부 폐지 공약이 논란이 되자 윤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동, 가족, 인구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부연했다.
이에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글을 올리며 맞불을 놓았다.
여가부의 역할과 권한을 오히려 확대·강화해 성평등부로 격상시킨다는 계획이다. 반대로 '이대녀' 표심을 공략하고 존재감도 키우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심 후보는 가족과 청소년 기능을 따로 떼어내 별도의 아동청소년부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여가부 폐지론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구상은 '개편' 쪽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평가된다.
이 후보는 앞서 여가부를 '평등가족부' 혹은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부처 명칭에서 '여성'을 뺐다는 점에서 '남성 역차별' 여론을 반영해 '균형'을 맞춘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개편'에 힘을 싣고 있다.
안 후보는 여가부 폐지론과 관련해 "종합적으로 정부 개편안을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정부 부처라는 게 하나만 떼서 이걸 없애고 말고 이럴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야 대선 후보들의 젠더 공약에 선동적 구호뿐 발전적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단순히 성별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내고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정부 부처가 여가부"라며 "정치권이 혐오나 차별·배제·부정의를 간과하고 혐오를 승인했기 때문에 이런 대선판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여가부 폐지론을 구호처럼 제시할 뿐 그 이후 구체적 정책 대안에 대한 발전적 논의는 없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젠더 철학이라는 게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26일 정의당 여성선대본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더 효율적인 성평등 추진체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여가부 등 현행 성평등 추진체계에 문제가 있다'라는 비판적 의견과 '성평등 정책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면서 "조직 개편에 대한 논의는 열어두되, '성평등 정책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대남 현상은 왜 나타났고, 어떻게 선거판을 흔들 영향력 있는 세대로까지 부상하게 된 것일까.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동)로 종종 해석되는 '이대남 현상'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만 20대 남성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였다.
당시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20대 남성 2명 중 1명은 반페미니즘 성향을 가졌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 불평등과 남성의 삶의 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18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만 19세 이상 만 60세 미만 남성 3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대 남성의 50.5%는 적대적 성차별주의나 반페미니즘 의식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의식은 30대(38.7%), 40대(18.4%), 50대(9.5%)로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낮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반면 여성을 약자이자 보호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온정적 가부장주의'의 경우 반대 흐름을 보였다.
50대의 경우 61.6%가 온정적 가부장주의 성향을 보였지만, 20대는 23.8%만이 이런 성향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젠더 관계에 대한 세대별 인식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1980∼1990년대 중반 고도 성장기에 청년기를 보낸 40∼50대 남성들은 노동시장에서 특권을 누릴 수 있었지만, 고등교육에서 성별 격차가 거의 해소된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 아래 성장한 20대 남성에게 여성은 치열한 경쟁상대로 인식된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대학 진학과 취업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20대 남성의 불안감·박탈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 남성은 기성세대와 비교할 때 생애주기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많지 않고, 취업 시장에서는 여성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젠더 문제라기보다는 계층 갈등이 맞물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그는 "주거와 일자리 문제는 정부와 기업에 책임이 있는데, 정치권이 이를 여성들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비판했다.
20대 남성 내 특정 세력의 목소리가 '이대남'의 목소리로 과잉대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는 "이대남은 기성정치인이 특정 세력을 지지 세력으로 삼기 위해 만든 것인데, 그 개념이 확장되고 세력화되고 있다"며 "마치 이대남이란 개념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애초에 만들어진 방식 자체부터 민심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20대 남성이 '이대남'이라는 하나의 속성으로 환원되지는 않으며 소득 수준과 계층에 따라 내부에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김 교수는 "20대 남성의 정치 성향이 꼭 보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다만 진보를 표방한 정권의 위선과 주거 정책 실패 등에 대한 반발이 큰 것이지 20대가 보수화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대남 현상의 원인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원인이 다층적이듯 해법도 다층적일 수밖에 없다"며 "무엇보다 정치권이 일자리와 교육, 주거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20대가 겪는 취업난과 관련,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누구도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며 "고용 구조의 문제가 취업 문제로 둔갑하고, 공정성의 문제가 불거지고, 남성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식으로 프레임이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근본적으로 채용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고용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정치권이 이대남의 분노를 여성들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무책임하다"고 꼬집었다.
권 교수는 "20대 남성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나 열망을 동일화할 수 있는 집단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대남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0대 남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마땅한 정치적 집단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되레 '정치적 도구'로 생산·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홍찬숙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강사는 최근 발표한 논문 '청년의 무엇이 성평등 프레임에서 젠더 갈등과 공정성 프레임으로 변화한 것인가'에서 "사회구조의 성별 불평등에 대해 여성들이 할당제 등 정책적 대응을 정치적으로 요구했듯이, 청년 남성들 역시 자신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을 해결할 정책을 정치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페미니즘이라는 도구를 획득한 20대 여성과 달리, 20대 남성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언어를 찾지 못했고 그 억울함이 반페미니즘으로 이어졌다며 "20대 남성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찾아 공론장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 주체로서 그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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