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통합에 필요하면 사면 해야 하는 것”
정치권에선 ‘김영삼-김대중 합의’ 방식 제기
논의 시 ‘정권교체 기간 국민 통합’ 명분 될 듯
文도 ‘국민 통합’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아
사면권 제한 공약 文, 연이은 사면 부담 가능성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회동이 오는 16일 이뤄질 예정인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이 테이블에 오를지 주목된다.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국민 통합’을 이유로 이 전 대통령 사면을 주장해온 만큼 문 대통령에게 특별사면을 건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도 국민 통합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지만,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후 ‘비리 정치인에 대한 사면권 제한’ 공약을 어겼다는 비판이 뒤따라 연이은 특별사면은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尹 “미래를 위해 국민 통합 필요…李 장기간 구금해 놓는 것 맞지 않아”
정권교체 시기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에게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건의하는 방식은 1997년 제15대 대선 직후 이뤄진 바 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김영삼 대통령은 대선 이틀 뒤인 1997년 12월20일 만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에 공감대를 이뤘고, 즉시 사면 결정 발표가 이뤄졌다. 당시 청와대는 “15대 대선 종료에 즈음해 국민대통합을 이뤄 당면한 경제난국 극복에 국가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사면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을 당선인이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합의함으로써 서로 다른 정치세력 간 화합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한 언론인터뷰에서 “미래를 위해 국민 통합이 필요하고, 국민 통합에 필요하면 사면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추진 의사를 밝혔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발표 이후인 지난해 12월30일 TK지역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전 대통령도 빨리 석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한 때 많은 국민 지지를 받고 중책을 수행해오신 분을 장기간 구금해 놓는 것이 미래를 향한, 국민 통합을 생각할 때 미래를 향한 정치로써 그게 맞는 것이냐, 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에서 MB 사면 문제가 거론된다면, 정권교체 시기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윤석열 당선인을 선택한 국민의 표심은 진영 갈라치기는 이제 그만하고 국민 통합을 통해 화합과 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달라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사면과 복권 문제를 이젠 매듭지어야 할 때이다. 문 대통령의 결자해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대선 후 최우선 과제로 국민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무엇보다 지금은 통합의 시간”이라며 “선거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고, 치유하고, 통합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5대 중대 부패범죄 사면권 제한’ 공약한 文…임기 말 李 사면 부담될 수도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으로부터 MB 사면과 관련한 공식적인 제안이 온다면 검토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해 말 국민 통합과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박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할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만큼, 윤 당선인이 사면을 건의하더라도 문 대통령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퇴임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특별사면하는 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19대 대선에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을 ‘5대 중대 부패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정치인·공직자에 대해선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DAS)의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삼성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20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이다. 이 전 대통령 구속기소를 이끈 건 2018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 당선인이다.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요구 여론이 큰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윤 당선인이 취임 전 문 대통령에게 특별사면을 공식 건의하는 데에 신중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29일부터 31일까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특별사면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60.0%로 ‘이 전 대통령도 특별사면을 해야 된다’(34.2%)는 응답을 크게 앞섰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같은 기간 성인 1007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전 대통령 사면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0.4%로, 찬성(35.0%)에 비해 높았다. 두 설문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여권 내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5선 중진인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이날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사면을 했고, 그래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도 자연스럽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라면서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 되실 분이 같이 뜻을 맞춰서 하면 좋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채이배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미 대선 과정에서도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선 ‘사면에 대한 부분은 검토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적절하다’는 평가들이 나왔기 때문에 (사면 결정은) 아직은 좀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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