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대통령실 130여명 참석
보수정권서 이례적 ‘총출동’
“대한민국 국민이 광주 시민
자유·인권 가치 널리 펼쳐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가기념일 행사로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오월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그 자체”라며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 낸 오월의 정신은 바로 국민통합의 주춧돌”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공식 연설에서 ‘통합’의 키워드를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열정부 당·정과 대통령실 주요 인사 130여명이 특별열차로 함께 광주를 찾아 ‘국민통합의 길’이라고 명명한 윤 대통령의 통합 행보에 힘을 보탰다.
윤 대통령은 18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늘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여러분을 뵌다. 취임 후 첫 국가기념일이자 첫 지역 방문이다. 감회가 남다르다”며 “오월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그 자체다. 그 정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다”라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의 5·18민주묘지 방문은 지난해 6월 정치 참여 선언 후 네 번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광주행 KTX 특별열차를 타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소속 의원 및 국무위원 등과 함께 광주를 찾았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09명 전원에게 참석을 권유했고, 일부 의원을 제외한 99명이 참석했다. 또 전날 임명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보수 정권에서 5·18 기념식에 당·정, 대통령실 고위직 인사 대부분이 참석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약속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기념사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오월정신을 헌법정신으로 규정하면서 5·18 정신의 실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기념식에 앞서 5·18 유가족들을 만나 “매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참석하겠다”고 약속하며 대선 후보 시절부터 약속한 국민통합과 5·18 정신 계승을 임기 내내 이어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 있는 역사다. 오월의 정신은 지금도 자유와 인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불법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할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이를 책임 있게 계승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후손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 출발”이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철학이다. 오월정신이 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 나가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또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라고 말했다.
◆취임사 없던 ‘통합’ 꺼낸 尹… ‘피로 지킨 자유민주’ 계승 역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철학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공식 연설문에서 명시적으로 ‘통합’의 가치를 강조했다. 취임사에서는 윤 대통령이 갖고 있던 정치 철학의 기반인 자유의 가치 수호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를 존중하며 스스로 ‘의회주의자’임을 강조했다면 18일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낸 5·18 정신을 헌법 정신으로 규정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세 차례 연설문은 자유에서 시작해 ‘국민 통합’으로 이어지는 윤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사는 1592자로 취임사(3303자), 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4118자)보다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앞서 한 번도 직접 거론하지 않은 ‘통합’이라는 단어가 연설 말미에 두 차례나 나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통합’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정치 자체가 통합의 과정”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7분가량 이어진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각각 8차례 언급하며 5·18 정신이 헌법 정신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 및 인권 수호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수차례 역설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자유에 대한 가치의 연장선에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던 5·18 정신이 있다”며 “5·18 정신에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가치가 담겨있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철학이 기념사에 담겼다”고 설명했다.
당초 초안에는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약속했던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내용이 담겼지만 개헌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명시적인 표현에서는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대신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며 5·18 정신을 ‘헌법 정신’이라고 규정하며 실질적인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오월 정신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며 올해 초 여러분께 손편지를 통해 전했던 그 마음 변치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광주 시민들에게 윤 대통령 본인의 실천 의지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앞서 3차례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을 때 마다 5·18 정신을 계승한 통합의 정치를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정치 참여 선언 후 처음으로 민주묘지를 찾아 방명록에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피로써 지킨 5·18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을 이뤄내겠다”라고 적었다. 윤 대통령은 실무자들이 작성한 연설문 초안을 놓고 최종 회의를 하면서 5·18 민주화 유가족의 슬픔을 국민 통합과 미래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하겠다는 구상을 담아내려고 7차례나 원고를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념사 말미에 들어간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은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라는 표현은 퇴고 중 윤 대통령이 직접 원고에 쓴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 말미에 준비된 원고에 없던 문장도 직접 추가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라고 말하며 기념사를 마무리했다. 해당 발언은 1963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동서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시청 앞에서 했던 연설 중 “모든 자유인은 그들이 어디에 살더라도 베를린 시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자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발언을 차용해 담았다고 대통령실 대변인실이 전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기념식에 앞서 5·18 유공자와 유족, 5월 단체 관계자들과 4분가량 비공개 환담을 하며 광주 5·18 기념식에 매년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환담에서 고(故) 전재수 열사의 유족 재룡씨가 ‘매년 (기념식에) 오실 수 없겠느냐’고 묻자 선뜻 “매년 참석하겠다”고 화답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호남 뚫어라” VS “텃밭 지켜라”
국민의힘은 5·18 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아 광주에 총집결하며 호남 끌어안기에 나섰다. 6·1 지방선거에서 역대 최고 호남 득표율을 거둬 거대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당 텃밭에서 영역을 넓히는 국민의힘을 견제하는 데 주력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서진 행보’가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에게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소속 의원 99명은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대거 참석해 ‘5·18 정신’ 계승 의지를 밝혔다. 총 109명의 소속 의원 중 코로나19나 지방선거 회의 등 관련 의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원 참석했다. 5·18에 거리를 둬온 보수 정당으로선 ‘파격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불모지인 호남과 수도권의 중도층 민심을 공략해 6·1 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저희 당에서 2년 가까이 해왔던, 호남에 대한 진정성 있는 노력의 결정체”라며 “저희도 이제 광주·호남에서의 과오를 딛고 지역 일자리, 산업 발전 문제를 놓고 당당히 민주당과 겨룰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번 지선에서 광주, 전남, 전북 3곳 모두에 광역단체장 후보를 냈다. 호남권의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선거에도 역대 가장 많은 후보를 내며 ‘호남 공략’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호남 출신의 정운천·이용호 의원을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으로 배치해 호남 예산 챙기기도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 국민의힘 의원은 ‘광주행 KTX 특별열차’에 동승하며 ‘당정 스킨십’을 꾀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출발 직후 열차 칸을 오가며 정부·여당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광주행 열차에서 국민의힘 호남동행단 소속 의원 7명과 조찬을 함께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국무위원들과 티타임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조찬 중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인준안 통과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부결시키면 오히려 야당이 손해를 볼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전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선 김한길 전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 조수진 최고위원 등과 함께 ‘주먹밥 도시락’을 오찬으로 먹었다. 5·18 당시 광주시 전체가 계엄군에 의해 고립되자 시민들이 주먹밥을 나눠 먹었다는 점에서 주먹밥에는 ‘나눔 공동체’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설명이다.
민주당도 당 지도부를 포함한 의원 100여명이 기념식이 참석해 국민의힘을 견제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싣겠다는 언급이 없는 점을 부각했다. 국민의힘의 ‘호남 구애’가 호남 출신 출향민이 많은 수도권 중도층이 움직일 수 있다고 보고 견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광주에서 열린 현장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말이 아닌 실천으로 광주 진실을 밝히고 정신 계승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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