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아내에게 “용서 구한다” 호소도
“남편이 무엇을 했나” 피해자 유족 증언
우크라, 러 전범 사례 1만 건 이상 보고
수사관들, ICC 제출할 전범 증거 수집 중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18일(현지시간) 열린 첫 러시아군 전범재판. 까까머리를 한 21세 러시아 병사 바딤 시시마린 하사가 수갑을 찬 채 키이우의 작은 법정에 들어섰다. 옆에는 무장 경비원들이 함께 했고, 시시마린은 긴장한 듯 고개를 숙인 채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판사가 “죄를 인정하는지” 묻자, 그는 조용히 “네”라고 대답했다. 피해자의 아내와 유가족은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으며, 검사가 사건을 진술할 때 이들은 두 손을 꼭 움켜쥐었다.
BBC에 따르면 이날 민간인 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러시아 육군 칸테미로프스카야 전차사단 소속 시시마린 하사의 두 번째 공판이 열린 19일 우크라이나 검찰은 종신형 선고를 재판부에 요청했다.
시시마린 하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사흘 뒤인 지난 2월28일 오전 11시쯤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주의 추파히우카 마을에서 자전거로 이동하던 비무장 62세 남성을 총으로 쏴 숨지게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날 첫 공판에서 혐의를 인정한 그는 이날 다른 병사들과 함께 러시아에 있는 본대에 합류하고자 훔친 폭스바겐 차를 타고 마을을 떠나던 중 피해자를 겨냥해 서너 발을 근접사격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아울러 다른 병사가 강압적인 어조로 자신이 쏘지 않으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것이라고 압박했다면서 그 당사자는 상관이 아닌,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일반 병사라고 부연했다. 다만 그의 말을 따를 의무가 있었는지를 묻는 말에는 “아니오”라고 명확히 답했다.
시시마린 하사는 재판을 지켜본 피해자의 아내에게 용서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법정에 나온 미망인을 바라보며 “당신이 나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부인은 BBC에 “시시마린 또한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이러한 범죄에 대해선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재판을 통해 피해자 부인은 다시금 비극적이고 참혹했던 하루를 떠올렸다. 그는 당일 집 밖 멀리서 총소리를 듣고서 곧장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면서 “남편에게 달려 나갔지만 그는 머리에 총을 맞고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나는 아주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이어 시시마린 하사를 향해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고자 여기 와있는 건가”라며 “우리 남편이 당신에게 무엇을 했나”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러시아군의 공세가 집중된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면 시시마린 하사를 석방해 러시아로 돌려보내는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해 법정 방청객을 숙연케했다. 마리우폴 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남아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끝내 러시아군에 투항한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안전한 송환을 희망한다는 취지다.
BB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금까지 러시아가 저지른 전범 사례가 1만 건 이상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트위터를 통해 “이번 재판을 통해 우리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모든 가해자, 즉 우크라이나에서 범죄를 저지르도록 지시하거나 방조한 모든 사람은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자국군이 민간인을 상대로 전범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수사관들은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출한 전쟁 범죄 가능성 관련 증거를 수집 중이다. ICC는 앞서 수사관, 법의학 전문가, 지원 인력 등 42명으로 구성된 조사팀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했다. 우크라이나 또한 향후 사건 기소 시 쓰일 증거자료를 보존하기 위한 특별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시시마린 하사의 재판에 대해 정보가 없다고 했고, 시시마린 하사의 변호사도 피고인이 러시아 관리와 접촉한 바 없다고 말했다고 AF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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