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출하량 평소 10%로 급감
화주들 납기지연 계약위반 우려
물류 거점서 동시다발 집회
부산항 컨테이너차량 통행 절반 줄어
충북선 시멘트 운송 못해 철도로 대체
갈 곳 잃은 일부 물량들 오래 방치돼
각 지역 항만공사들 임시장치장 확보
울산, 노조와 대치중 경찰 4명 병원행
경찰, 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 4명 체포
시멘트 운송차량 절반이 화물연대
철강도 출하 중단… 업계 전전긍긍
하이트, 생산·출고 능력 절반 그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7일 각계각층의 ‘물류 대란’ 우려에도 무기한 집단 운송거부를 밀어붙이며 물류난이 현실화하고 있다. 총파업 첫날 전체 조합원의 3분의 1가량이 전국 각지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첫 대규모 파업인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 엄정 대응 방침을 재확인했다. 당국의 대응이 향후 5년간 노정관계의 가늠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화물연대는 부산, 인천, 경남 등 전국 12개 지역에서 지부별로 집단 운송거부 출정식을 실시했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화물연대 조합원(약 2만2000명)의 37% 수준인 8200여명이 집회에 나섰다. 국토부는 총파업이 사전에 예고된 만큼 항만 등 주요 물류거점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전국적 물류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항만의 컨테이너 보관능력 대비 실제 보관된 컨테이너 비율인 컨테이너 장치율(68.1%)은 평시(65.8%)와 유사한 수준이었다.
다만 시멘트와 주류 업계 등에서는 출하 지연이나 출하량 급감 등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도권으로 시멘트를 공급하는 경기 의왕 유통기지는 이날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방해로 오전부터 시멘트 운송이 전면 중단됐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이날 전국 출하량이 평소 대비 10% 선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가 주요 항만, 산업단지, 사업장 등 전국 50여개 거점에서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어 향후 물류난이 다른 분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화주들은 납기 지연으로 계약 위반 사항이 생길까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화주협의회’를 운영하는 한국무역협회의 이준봉 물류서비스실장은 “대기업은 그나마 경험이 있어 사전에 물량을 빼놓는 등 노하우가 있지만, 중소기업은 정보력이나 시스템 차원에서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국적 물류 대란에 대비해 비상수송대책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화물연대가 운송거부와 대체수송 저지 투쟁을 시작한 만큼 경찰도 강력 대응할 방침이다. 이날 울산 석유화학단지에서 화물차량 통행을 방해하고 경찰 기동대원을 다치게 한 화물연대 조합원 4명이 처음으로 경찰에 검거됐다.
이번 총파업은 윤석열정부와 민주노총 사이 ‘샅바 싸움’으로 흐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사용자의 부당노동 행위든, 노동자의 불법 행위든 간에 선거운동 할 때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천명해 왔다”며 ‘불법 행위 원칙대응’ 기조를 밝혔다. 하지만 기계적인 법과 원칙 준수만으로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과 노사관계 관련 국정철학을 엿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정책 기조로 ‘친시장’을 내건 정부가 노사관계 조율에서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는 이번 사태 수습 과정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화물차 수백대 늘어서 운송 차질… 전국 곳곳 물류난 현실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화물연대가 16개 지역본부별로 총파업 출정식을 연 이후 전국 물류 중심지들의 통행 차량은 크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국내 물류의 핵심 기지 역할을 해온 부산항을 필두로 전국 곳곳에서 물류 동맥이 타격을 받은 것이다.
화물연대 부산지부는 7일 오전 10시 부산항 신항 삼거리에서 770여명의 조합원과 550여대의 화물트럭이 도로 일부를 점거한 채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부산 신항을 비롯한 부산항 전체에는 비상이 걸렸다. 시간당 1000대 이상의 컨테이너 차량이 드나들던 부산항 신항 컨테이너터미널은 통행 차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는 컨테이너 차량의 경우 상대적으로 화물연대 노조 가입 비중이 높은 데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트럭 기사들도 안전운임제로 인한 노조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이나마 파업에 동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울산지부도 울산 신항 앞에서 1500여명의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출정식을 열었다. 출정식에 이어 정일컨테이너 부두와 울산석유화학단지 정문 등 총 6곳으로 나뉘어 집회를 이어갔다. 대규모 시멘트단지가 집결된 충북은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앞에서 출정식을 열었다. 시멘트 화물차의 경우 안전운임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조합원 동참률이 높았다. 이날 집회에는 벌크트일러(BCT)와 화물트럭 등 차량 100대가 동원됐고, 당장 한일시멘트와 성신양회 소속 화물차 운송이 중단돼 철도를 통한 운송만 이뤄지고 있다.
인천에서는 조합원과 함께 화물차 400여대가 일대 도로변에 길게 늘어서면서 하루 평균 1200∼1300대의 화물차가 출입하던 인천항의 물자 운송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경남에서도 이날 오전 거제 삼성중공업 앞에서 800여명의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출정식을 열었다. 이번 파업으로 조선소가 집적된 거제지역 물류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원에서는 50여명의 조합원이 이날 오전 영월군 한일현대시멘트공장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출정식 이후 영월군 한일현대시멘트와 강릉시 옥계한라시멘트, 동해시 쌍용C&E 동해공장으로 이동해 집회를 이어갔다.
화물연대의 파업 현실화에 일부 물량들은 방향을 잃고 방치됐다. 경북 포항항과 전북 군산항엔 철근과 펄프, 곡물원료 등이 평소보다 오래 바닥에 놓여있기도 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하루 물동량 약 4만9000t 가운데 화물연대 파업으로 약 2만t의 출하가 지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각 지역 항만공사들은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전날 오후부터 비상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화물연대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부산항 주요시설 보호 및 원활한 항만 운영을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환적화물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항만 내 부두를 연결하는 내부 통로를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 또 이날 화물연대 파업으로 평소 70%인 부산항 화물 장치율이 74%로 소폭 늘어나면서 신항 5곳과 북항 2곳 등 항만 터미널 부근에 임시 장치장 7곳을 확보해 둔 상태다.
인천항만공사는 물류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항 배후단지 등에 임시 컨테이너 장치장을 추가로 확보했다. 여수광양항만공사 측은 항만 내부에 예비 장치장을 확보하고, 육상 수송을 위해 군과 협의하고 있다. 광양항의 화물 장치율은 61% 수준이어서 당장 수입이나 환적물량 처리에는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화물연대가 주요 지점에서 거점투쟁을 하게 될 경우엔 일부 항만에서 수출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날 울산경찰청은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화물연대 노조원 4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10분쯤 울산시 남구 석유화학단지에서 집회 중이던 화물연대 노조원 200명이 3문 밖으로 나가려던 화물차 1대를 막으면서 도로를 점거했다. 대치 과정에서 도로를 막고 경찰을 밀친 노조원 1명이 체포됐다. 오후 2시40분쯤에는 남구 석유화학단지 4문 앞 왕복 4차로를 화물연대 노조원 200여명이 막고 경찰과 대치했다. 대치 과정에서 다친 경찰관 4명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경찰을 밀친 노조원 3명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수도권 레미콘사, 시멘트 재고 2∼3일 사태 장기화 땐 건설현장도 피해 우려
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공식 행동에 들어가면서 국내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시멘트 업계다. 한국시멘트협회 등에 따르면, 전국 곳곳의 시멘트 생산공장과 창고 등에서 운송 차질이 벌어지고 있다. 시멘트 운송차량 차주의 절반 정도가 화물연대 소속인 데다 화물연대 소속이 아닌 비조합원들도 파업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시멘트 운송량이 급감한 상황이다. 수도권 주요 공급망인 경기 의왕(부곡) 유통기지에서는 화물연대 차량이 진입로를 막아 운송이 전량 막혔고, 서울 수색과 인천, 부산, 목포 등 주요 유통기지도 운송이 중단됐다.
시멘트 출하 중단에 레미콘사들도 줄줄이 생산에 차질을 겪었다. 유진기업·삼표 등 수도권 주요 레미콘사들은 자체 저장소를 통해 확보한 시멘트 재고는 1∼2일, 길어야 2∼3일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차례는 건설업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며칠만 계속돼도 수도권 상당수 건설현장에서 피해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 다른 악재가 겹쳐 전국 현장이 공통적으로 고작 며칠분 정도의 레미콘만 확보한 상태로 운영하고 있다”며 “이르면 3일 안에 재료가 떨어지는 건설현장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이번 파업으로 하루 물동량 4만9000t 중 약 2만t 규모의 출하가 지연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루 9000t을 생산하는 현대제철 포항공장은 이날부터 출하가 전면 중단됐다.
파업 여파는 주류업계도 피하지 못했다. 화물연대 차원의 총파업에 앞서 최근 일부 화물차주가 먼저 파업에 들어가 제품 생산과 출고에 차질을 빚어온 하이트진로는 “파업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라고 전했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이달 들어 경기 이천공장과 충북 청주공장 등의 생산·출고 역량이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 이천공장의 경우 매일 수도권 전역에서 수백명의 주류 도매상들이 직접 배송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실정이다. 편의점 업계는 이런 상황을 감안해 하이트진로 소주 참이슬과 참이슬 오리지널, 진로이즈백에 대한 발주를 제한했다.
오비맥주도 물류 위탁사 소속 화물차주 대부분이 총파업에 동참하면서 이날 이천·청주·광주 등의 공장 맥주 출하량이 평소의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전자업체들은 아직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내부적으로 대책을 고심 중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부품 수급과 공장 가동, 완제품 출하 등에서 단계적으로 차질이 올 수 있어서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미 예고된 파업이라 당장 제품을 운송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파업이 길어지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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