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비자 받기 위해 대사관 긴 행렬
“K문화 더 매력”… 높아진 위상 실감
한국 마니아층 확대 방안 고민해야
일본 생활을 시작한 지 고작 두 달이 조금 넘은지라 현지에서 한류를 체감할 때마다 뿌듯함과 묘한 쾌감을 느낀다. 일본에서 한류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예전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해 들은 바도 숱하지만 직접 경험하는 건 확실히 특별하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한 일본 여성이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한국 드라마 ‘나의 나라’를 보고 있었다. 고려 말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다. 그 여성이 600여년 전 조선에서 전개된 격동의 한 시기를 얼마나 알고 있고, 제대로 이해할 수는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우리의 역사가 일본인들의 일상 속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지난달 초 ‘골든위크’(황금연휴)의 풍경을 스케치한 일본의 방송은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 모습을 반복적으로 내보냈다. 한국 음식을 즐기고 한국 상품을 쇼핑하는 젊은이들 중에는 연휴를 맞아 지방에서 이곳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방송이 그것을 올해의 유별나거나 이질적인 모습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일본인들이 연휴를 즐기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라는 태도였다.
가장 인상적인 건 이번 달 들어 주일본 한국대사관 영사부를 찾은 일본인들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한국 관광 재개를 위해 비자 발급이 시작된 지난 1일부터 밤을 새워 기다린 이들을 포함해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리는 일이 연일 이어졌다. 도쿄 영사부와 일부 지역 총영사관은 담당 직원을 늘리고 당일 처리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번호표를 배부하거나 이메일 방문예약을 받는 방식 등으로 대응했다. 예상치 못했던 진풍경에 한국 언론은 물론, 일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일본인들의 밝은 표정이다. 비자를 받는 것도 아니고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할 수 있는 건 신청뿐이지만 한국에 갈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흔쾌히 말했다. 2년을 넘게 한국에 가지 못했는데 하룻밤쯤 새우는 게 대수겠느냐고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불편을 지적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의 주된 정서는 기쁨, 설렘이었다.
이들이 한국에 대해 일본인들이 가진 관심의 정도를 전반적으로 보여 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 관광비자를 받겠다고 밤샘까지 자처하는 건 한국에 대한 애정이 유별나다는 의미다.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고, 코로나19로 한국 방문이 불가능해지자 “속된 말로 안달이 났던 사람들”이라는 한 전문가의 진단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일본에서 일상화된 한류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관심과 열망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단 건 분명해 보인다. 한국에 대한 오래되고 깊은 흥미 혹은 애정을 가진 이들의 존재는 한류가 성장해 온 토대인 동시에 그것의 미래를 전망하는 가늠자일 수 있다.
한국일보, 요미우리신문이 한·일관계에 대한 양국 국민의 인식을 공동 조사해 지난 9일 보도한 내용 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어느 쪽이 세계에서 인기가 높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을 택한 일본인의 비율이 46%로 ‘일본’(39%)을 꼽은 비율보다 높았다. 일본인들 스스로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는 한류의 현재 위상을 보여 준다. 상대국 대중문화에 매력을 느낀다는 대답은 18∼39세 젊은층에서 양국 모두 절반을 넘었다. 한류가 지금보다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자랑스러운 성과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를테면 한류를 이끄는 선두에 서 있는 ‘한국 마니아층’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20,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대중음악, 패션, 음식, 쇼핑에 집중된 관심을 보다 다양한 연령, 분야로 넓혀 가고 안착시키는 것이다. 밤샘 비자 신청으로 드러난 한국에 대한 기대를 실제 만족으로 연결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그렇게 달려들다 보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가 좀 더 또렷해질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내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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