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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 교수의 저서를 꼽았을 때 나도 모르게 “닮긴 닮았다”고 중얼거렸다. 시카고학파의 태두인 프리드먼은 생전에 고집불통의 자유지상주의자로 유명했다. 안 끼어든 논쟁이 없고 호전적인 태도로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본인 역시 그런 스포트라이트를 즐겼던 듯하다. 그러나 이면에는 치밀한 성격에 탄탄한 이론적 배경을 깔고 있었다. 윤 대통령 역시 거침없는 태도로 인상이 강렬하지만 그와 비슷한 연배의 검사들은 윤 대통령을 “섬세한 성격의 반듯한 모범생”으로 평한다는 점에서 성격의 일단이 닮았다.

프리드먼은 그래서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흔히들 프리드먼의 업적을 두고 미국 금융당국이 1928∼1929년 통화 긴축을 저지른 데서 대공황이 발생한 점을 논증한 데 있다고 요약한다. 프리드먼의 실제 주장은 이보다 더 섬세하다. 프리드먼은 금융당국이 실책을 범한 ‘경제 리더십’의 실종에 대해서도 사려 깊게 따져 들어간다. 그러면서 경제적 식견과 리더십이 출중한 벤저민 스트롱 뉴욕준비은행 총재가 1928년에 죽음을 맞지 않았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현준 경제부 차장대우

프리드먼의 사상에서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는 경제 이론을 읽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동시에 “책임감과 리더십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뛰어난 인물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밀턴 프리드먼, ‘대공황 1929∼1933년’)는 리더십에 대한 지혜 역시 읽어내야 한다. 경제에 대한 앎 못지않게, 앎을 실천하는 리더십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경제 현안으로 꼽으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경제와 리더십에 대한 프리드먼 사상의 배경 속에서 나온 말로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후 두 달이 지났지만 여당과 공직자들이 프리드먼의 혜안과 윤 대통령의 경제철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수조원대 적자를 내던 정유사가 얼마 전부터 갑자기 돈을 벌었으니 ‘횡재세’를 물리자는 게 좋은 예다. 이러면 정유사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공장 가동률을 떨어뜨리거나 국내 공급 물량을 해외 수출로 돌리는 등의 자구책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정유사는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후 해외로 되파는 ‘수출 기업’이다.) 결과적으로 국내 석유 공급이 감소해 기름값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도 세금으로 물가를 때려잡겠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니, “경제학 원론이나 읽어보라”는 비웃음을 사는 것이다. 경제부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적 박탈감 운운하며 월급쟁이 봉투를 건드리려고 하는데, 이건 개발도상국 시절의 구닥다리 관치 아닌가.

이상한 말을 처음 한두 번 할 때는 웃고 넘어간다. 그러나 세 번을 넘어가면 실력을 의심받는다. 리더십은 그때 무너진다. 우리 정부와 여당의 면면에서 프리드먼과 윤 대통령이 우려한 ‘리더십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더 나아가 ‘반지성주의’를 읽어내는 건 과민반응일까.


박현준 경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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