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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쪽방에 필요한 게 에어컨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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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15 22:48:38 수정 : 2022-07-15 22: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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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경찰 기자 중 쪽방촌을 안 가본 기자가 있을까. 혹서기와 혹한기마다 취약계층을 취재하기 위해 매년 쪽방촌을 찾는다. 기자 방문에 익숙해진 쪽방촌 주민이 “저번에도 본 것 같다”며 인사할 정도다.

쪽방촌의 어려움을 지적하는 기사가 매년 쏟아져 나온다는 건 이들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쪽방촌을 취재한 기자들 연차는 해가 지날수록 높아져 가는데, 쪽방촌 주민들은 여전히 ‘취약’하다. 매년 쏟아낸 쪽방촌 기사들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조희연 사회부 기자

쪽방촌 주민들이 겪는 전기요금 갑질 문제를 보도하면서도 ‘이 기사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쪽방촌 주민들이 폭염에 전기요금 인상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으며, 그 배경에 주먹구구식 전기료 징수체계가 있다는 기사였다.

쪽방촌 주민들의 고충을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고충이 전달된다고 이들 삶이 나아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전기요금을 덜 내고, 에어컨을 쐴 수 있어도 쪽방은 여전히 쪽방이다. 화장실도, 부엌도 없는 한 평 남짓한 ‘방’은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 한들 여전히 비적정주거다. 쪽방촌 폭염 대책이라며 에어컨 설치와 전기요금 지원에 나선 서울시 정책에도 회의적인 이유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 연락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쪽방촌이 취약하다고 하죠. 근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를 안 해요. 사람이 살 수 없는 쪽방 같은 공간은 없어져야 하잖아요. 최저주거기준을 마련하는 게 훨씬 더 필요한 일이에요.”

쪽방촌 주민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문제를 꺼냈다. 사실 쪽방촌 전기요금 문제를 처음 접한 건 쪽방이 아닌 국회에서였다.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콘퍼런스’가 열렸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김모(76)씨는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증언대회와 토론회 끝에 발언권을 얻어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 상해서 정말 여기 오고 싶지 않았는데, 이 말은 해야겠어서 왔습니다. 우리 없는 사람들 돈 좀 올려주십시오. 이런 걸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지만, 지금 가스비도 오르고 전기료도 올라서 살 수가 없습니다. 통장에 돈이 불 수가 없습니다.”

김씨가 말한 ‘돈’은 기초생활수급비다. 이날 시민단체들이 공개한 기초생활수급자 25가구의 가계부를 보면, 한 달 평균 86만5858원의 수입 중 81만7844원을 지출했다. 식비와 주거비, 관리비, 의료비 등을 내고 나면 평균 4만7015원만 남는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굶거나 과자로 끼니를 대신하고, 공과금을 줄이기 위해 냉난방을 포기해야 그나마 손에 쥐어지는 금액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거가 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1조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해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들의 생활이 정부가 말하는 ‘최저’ 수준이고 ‘자활’이 가능한 정도일까. 수년째 이어지는 ‘취약함’은 에어컨 한 대와 전기요금 5만원을 지원하는 것으론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쪽방촌에는 더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조희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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