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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어민 북송과 법의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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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25 23:29:42 수정 : 2022-07-25 23: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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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었다. 고등학생 때 문과를 선택하면서 본의 아니게 수학 기피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수학에 대한 사랑은 그 이후로도 꽤나 이어졌다. 특히 좋아했던 수학 분야는 방정식이었다. x, y라는 미지수를 공식과 분석을 통해 답을 찾는 과정이 좋았다. 변수가 많을수록 난제였지만, 그럴수록 도전의식은 비례해서 타올랐다. 수학 공식을 기초로 문제 상에 있는 변수를 하나씩 해석해 답을 찾았다. 때로는 실패한 날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도 수학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세상만사가 수학은 아니지만, 때로는 수학과 닮아 있다. 사건은 방정식이다. 범죄 혐의는 법이라는 공식과 증거라는 변수를 해석해 미제를 입증하는 과정이다. 똑같은 방정식이더라도 풀지 못해 미제로 남겨진 사건이 있는가 하면, 복잡한 변수를 증명해 내 해결된 난제가 있다.

김범수 외교안보부 기자

갑자기 무슨 수학 이야기를 하는 소리인가 하면, 기자는 2019년에 있었던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감정을 넣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탈북 어민들이 판문점을 통해 북송될 때 주저앉는 모습에 감정 이입을 하지 않겠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기에 ‘죽어 마땅하다’는 감정도 배제하겠다.

알려진 것처럼 탈북 어민 두 명이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 맞다고 하자. 사실이라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다. 동시에 그들 역시 헌법에 따라 한국 국적의 시민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우리 법에 따라 ‘인권’이 보장되며, 사법체계에 따라 변호인을 선임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쉽게 말해 영화에서 경찰 또는 검찰이 용의자에게 멋들어지게 말하는 ‘미란다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법 감정’은 그 다음이다. 이들이 흉악범이더라도 국내에 들여와 기소를 하고 재판을 통해 처벌하는 게 원칙이다. 한국 국민이라면 그 원칙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사법체계가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 진실 규명은 어려워지고, 지독한 사법 불신만 남는다.

일각에서는 탈북 어민 형사소추는 생각처럼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이들이 배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닦아내고 페인트로 덧칠하는 등 증거를 인멸해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거라는 논리다. 이 때문에 지난 정부가 신속하게 북송을 결정한 것은 ‘합리적인 일’이라고 박수를 친다. 하지만 방정식을 풀어낼 자신이 없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수포자(수학포기자)’일 뿐이다. 달리 말해서 탈북 어민의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없어 북한 주민도 재판을 받을 수 있는 헌법상 권리를 위배해가며 강제 북송을 했다는 것은 법치주의 포기선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은 솔직해져야 한다. 탈북 어민의 북송이 절차적으로 적절치 못했다고 인정하고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맞아야 할 매를 두려워 사법주의 근간을 무시해가며 피하고자 한다면, 손바닥으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북풍(北風)’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김범수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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