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별 평가, 졸속 그쳐선 안 돼
낙하산 인사·노조 저항 뿌리쳐야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 14개 재무위험 공공기관 평균 부채비율이 27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의 부채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372조원에 달했다. 350개 공공기관 전체 부채의 64%를 차지한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본예산 기준)의 3분의 2에 달하는 액수다. 이런데도 높은 임직원 임금과 복리후생비를 지출했다. 터무니없는 성과급 잔치도 벌였다. 어제 세계일보가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알리오)를 통해 14개 재무위험 공공기관의 경영지표를 분석한 결과다. 심각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2014년 대구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새 사옥을 기존 사옥보다 4배 넓게 지었다. 실내 수영장과 잔디 축구장 등 각종 편의시설 공사비로 2900억원을 썼다. 당시 가스공사가 안고 있던 부채는 32조원에 달했다. 현재 가스공사의 부채비율은 무려 378%다. 지난 6월 일반 국민과 공공기관 직원 등 1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5%가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이 심각하다”고 답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국민 72%는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다. 도 넘은 방만 경영을 일삼는 공공기관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공공기관 관리체계 개편 방안으로 내년부터 350개 전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정원과 조직을 축소하고 경상경비를 10% 이상 줄이겠다고 한다. 보수체계를 개편하고 골프장 회원권 등 복리후생용 자산을 매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공공기관들은 가이드라인에 따른 혁신안을 8월 중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올해 말까지 기관별 혁신안이 확정되면 분기별로 평가가 이뤄진다. 졸속평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역대 정부마다 정권 초기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을 부르짖었다. 늘 용두사미에 그쳤다. 전문성이 없고 정통성이 약한 낙하산 기관장과 노조의 결탁으로 개혁의 동력을 상실한 탓이다. 경영실적은 악화하기 일쑤였다. 적자를 메우려고 공공요금을 올리거나 세금으로 충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더구나 문재인정부의 공공부문 확대정책을 거치면서 공공기관의 비효율·방만 경영의 적폐가 전방위로 확산됐다. 윤석열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의 성공을 바란다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개혁의 속도와 낙하산 인사의 악습을 외면하며 공공기관을 바로잡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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