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박스오피스 1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분 후보 올라
“당대회 앞두고 신농촌, 빈곤퇴치사업 훼손” 주장 등 나와
중국 농촌 주민의 피폐한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 호평과 인기를 받던 영화가 갑자기 상영이 중단됐다.
27일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 등에 따르면 중국 농촌 지역으로 배경으로 지난 7월부터 방영되던 ‘인루천옌’(隱入塵煙·흙으로 돌아가다)이 지난 26일부터 영화관과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등에서 갑자기 상영을 못하게 됐다.
인루천옌은 북서부 간쑤(甘肅)성의 한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가족에게 버림 받은 노총각 남성과 장애를 가진 여성이 가정을 꾸려 서로를 의지하며 마을 사람들과 친지들의 조롱과 핍박 속에서도 가난하지만 우직하게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또 농사를 짓기 위해 가축과 함께 흙집에서 지내는 이들 부부에게 아파트를 팔고 방송 인터뷰를 하는 현실성 없는 정부 정책 등도 영화에 담겼다. 영화는 장애를 가진 부인이 물에 빠지지만 구조받지 못해 죽게 되고, 남편도 결국 부부가 만든 흙집이 허물어진 것처럼 모든 것을 정리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중국 농촌 최빈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200만위안(약 4억원)의 저예산 영화지만 중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고 1억위안(약 2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등 매우 높은 인기를 끌었다. 지난 2월 72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분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영화감독 리뤼쥔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작은 사람을 위한 전기를 만드는 것은 아직 죽지 않은 창작자의 양심”이라며 “이들은 단지 14억 인구 중 2명이 아니라 기억되고 존중되고 주목받을 가치가 있고 우리는 더 많이 알릴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중국의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을 비판하고 당의 빈곤퇴치사업의 위업을 전면 부정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결국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됐다.
실제 중국 쿤룬처연구원은 정옌시(鄭晏石) 선임연구원인 “영화 제작자는 어떤 입장이고 누구를 대변하는가. 당 대회를 앞두고 반복된 조작을 한 이 영화의 숨은 의도는 무엇이냐”며 “검열 부서는 이런 엉망진창이 영화를 어떻게 심사한 것이냐”고 날을 세웠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 영화가 중국 농촌에 대해 매우 생생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그렸지만 공산당이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 네티즌은 “우리의 모든 영화, 연극, 예술 작품들이 이유도 모르게 내려지는 것이 아쉽다”며 “몇년 후 모든 것이 강제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 땅에는 토론할 수 없는 사람, 일, 사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