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배럴당 87.76달러로 상승
최근 3거래일간 상승폭만 10%
美 “근시안 결정에 실망” 비판
국내 항공업계 손실 커져 비상
배럴당 1弗 오르면 수백억 손해
오펙(OPEC·석유수출국기구)과 러시아 등 비회원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가 11월부터 원유 생산을 하루 200만배럴 감산하기로 하면서 국제유가에 또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증산을 요구하던 미국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전략비축유 방출 검토에 들어갔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오펙플러스는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 장관급 회의를 마친 후 다음 달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0만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대 감산 규모다. FT는 200만배럴이 하루 원유 생산량의 약 2% 수준이라고 전했다. 일부 회원국이 현재 생산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어, 실제 감산량은 100만배럴 안팎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산 이유는 유가 하락 방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배럴당 120달러(약 16만8000원)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최근 80달러(약 11만2000원)대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유가 약세를 이끌었다.
수하일 알 마즈루이 아랍에미리트(UAE) 에너지 장관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까지 폭락했던 점을 언급하며 “유가 급락을 피하기 위해 오펙플러스가 감산을 결정했다”며 “경기 침체로 인한 석유 시장의 붕괴를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펙플러스 결정에 국제유가는 또다시 출렁였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1.24달러(1.43%) 오른 배럴당 87.76달러에 거래를 마쳐 지난 9월14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3거래일간 상승폭만 10% 수준에 달한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도 장중 한때 93.99달러까지 오르며 최근 3주간 가장 높게 치솟았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날 감산 결정 이후 브렌트유 가격이 4분기에 11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즉각 실망감을 드러냈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세계 경제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지고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처하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펙플러스의 근시안적 결정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다음 달 전략비축유 1000만배럴을 추가로 방출할 것과 단기에 국내 에너지 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는 추가 조치가 있는지 검토해볼 것을 지시했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백악관이 오펙플러스 회원국과 소송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날 성명에서 백악관은 “오펙플러스의 결정에 대응해 미국 의회와 추가 수단을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 발언이 지난 5월 상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한 석유생산수출카르텔금지(NOPEC) 법안을 백악관이 지지할 가능성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그간 백악관은 이 법안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소극적 태도를 보여 왔다.
백악관이 입장을 뒤집어 NOPEC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 법무부는 오펙플러스 국가에 대해서도 미국 연방법원에 가격담합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어떤 형태로 다른 국가에 대한 판결을 내릴지가 불분명하고, 오펙플러스 회원국들이 달러 거래를 거부하는 등 미국에 반격할 방법이 많아 실행 여부는 미지수라고 통신은 지적했다.
국내 항공업계도 유가 변동에 비상이 걸렸다. 대형항공사의 영업비용 중 연료비는 30~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대한항공은 연간 유류 소모량이 약 2800만배럴로,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약 2800만달러(약 397억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유류비 지출이 약 180억원 증가한다.
항공사가 유가 상승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운임에 별도로 부과하는 유류할증료는 지난 7∼8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유가가 하락하며 다소 떨어졌지만 향후 유가가 급등하면 이에 연동해 다시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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