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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런던의 ‘인종적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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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11 00:00:25 수정 : 2022-10-11 0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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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년간 영국 런던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최근 복귀했다. ‘민주주의에서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수업의 공공외교 분야 세미나 중 중국 친구와 홍콩 친구 사이 벌어진 논쟁이 잊혀지지 않는다. 백신 개발국들이 타국에 백신을 공급·기부하면서 ‘연성권력(soft power)’을 구축하는 행위에 대한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홍콩 친구가 라틴아메리카와 동남아 지역에 공급된 중국 백신이 ‘가짜 백신’이라는 취지로 얘기하면서 중국 친구 얼굴이 굳었다. 다양한 인종이 섞인 강의실에서 특히 앳된 두 동양인 청년의 주제를 벗어난 논쟁은 격앙됐다. 영국인 교수는 논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2차 대전 뒤 꾸준히 이민을 받아들인 런던은 인종적으로 다문화 도시다. 이민자 사회와 유학생 사회에서 그중 일명 ‘인종적 중국인(Ethnic Chinese)’의 비중이 적지 않다. 런던 차이나타운의 ‘중국 요리’가 본토뿐 아니라 대만·홍콩식으로 다양하듯 그들의 출신도 다양하다. 문화적 유사성과 한류 때문인지 이들은 대부분 한국인에 호의적이었다. 덕분에 제3국에서 부대껴 살아가는 이들의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필자가 만난 이들에 한정된 얘기다.

홍주형 외교안보부 기자

본토 한족 중국인과 그 외 사이 흐르는 묘한 긴장은 피할 수 없지만, 이들은 평소 정치적 대화를 피하며 공존해왔다. 하지만 최근 갈등 노출을 피하기 어려운 일이 여럿 생겼다. 이미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로 골이 깊어졌고,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영국 사회 전역의 거센 반러 여론과 함께 대만인들의 반중 정서가 깊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강의실 안팎에서 홍콩·대만인들은 중국인들에게 본토 중심의 인식이 비치면 발끈했다. 반대로 중국인들은 한국 일각의 반중 정서까지 포함시켜 “왜 아시아인들끼리 잘 지내지 못하냐”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이들은 때로 공통의 문화를 매개로 뭉쳤다. 음력 설과 추석(중추), 차이나타운에서 이들은 함께 전통문화를 즐긴다. 하루는 예정에 없이 필자가 각각 친한 중국, 대만 친구와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됐는데, 속으로 긴장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이들은 우육면을 매개로 급속히 친해졌고, 이후 때로 필자를 빼고 중국어로 대화하는 만남을 갖곤 했다. 서로 보다 깊은 생각도 나누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도 북한 주민과 소통할 수 없는 한국인이 볼 땐 부러운 장면이다.

이들과 지내며 복잡한 동북아 환경이 젊은 ‘인종적 중국인’의 삶과 이주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게 됐다. 우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반중 정서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힘들어하는 중국 친구, 국가보안법하 홍콩에서 살 수 없어 모든 것을 걸고 삶의 터전을 옮기는 홍콩 친구, 어린 시절 외국 외교관들이 자국을 버리고 떠난다는 뉴스를 보고 받은 충격을 기억하는 대만 친구의 이야기는 각각 아프다.

민족주의를 강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신문 지면에서 ‘미·중 갈등’, ‘양안 갈등’ 등으로 단순화되는 표어 이면에 살고 있는 보통 이들의 삶을 되새기고자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장기 집권이 공식화되는 공산당대회가 임박한 현재 런던의 이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홍주형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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