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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영끌’ 투자도 빈익빈 부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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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17 23:13:03 수정 : 2022-10-17 23: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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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부동산 투자 열풍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반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온 아버지는 ‘영혼을 끌어모아(영끌)’ 경기 신도시에 있는 큰 평수의 아파트를 덜컥 분양받았다. 당시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5.00%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8%를 웃돌았지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앞에선 낮은 수치로 여겨졌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가 분양을 받자마자 거짓말처럼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분양받은 아파트는 ‘버블 세븐’(강남·서초·송파·목동·분당·용인·평촌의 2006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7개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아버지가 매일처럼 야근하며 번 월급 대부분은 족족 이자 상환으로 사라졌다. 그 시절 가족들은 목욕탕 온수를 쓸 때마다 서로 눈치를 봤다. 가족이 경제난을 극복하고 대출금을 모두 갚는 데는 10년이 걸렸던 것 같다.

김범수 경제부 기자

역사는 반복하고 인간은 통과 의례처럼 같은 시련을 겪는다고 했던가. 몇 년 전부터 청년층을 중심으로 영끌 투자 광풍이 일었다. 투자 대상은 부동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리고 잔치가 끝난 지금 그들은 추락하고 있다.

친구 H는 최근 서울을 떠났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직장까지 구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경기 동탄으로 터전을 옮겨야 했다. H는 지난해 광풍에 휩쓸려 동탄에 있는 집을 샀다. 하지만 올해 들어 빠르게 꺼지는 부동산 가격은 H의 예상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는 너무 급락한 가격으로 집을 팔 수는 없었다. 더욱이 높은 금리로 전세 세입자조차 구할 수도 없었다. 결국 서울에 있던 자기 전세보증금을 빼서 동탄으로 가야했다.

한 달 이자 비용만 180만여원.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만 해도 사들인 집이 H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기대했건만, 이제 집은 바닥이 없는 늪이 돼 H를 서서히 가라앉게 하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친구 C도 돈을 끌어모아 서울에 있는 집을 샀다. 그도 6억원 이상의 돈을 끌어모아 집을 샀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H와 달리 큰 고통을 겪지 않는 눈치였다. 넌지시 이자를 갚느라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C는 “어”하고 머뭇거렸다.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C는 두리번거리더니 사실 은행에 돈을 빌리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부모님이 5억원에 가까운 돈을 턱 하니 물려줘 자신이 모은 돈을 합쳐 집을 샀다고 했다. C의 집 가격도 1억원 가까이 떨어졌으니 고민이 없을 리가 없겠지만, H와는 결이 달랐다. 여유 있는 부모님을 둔 덕분에 C는 은행에 이자 한 푼 내지 않았고, ‘생애 첫 주택’ 대출 혜택까지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더욱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H와 달리 C는 다시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거나 대출을 받으면 지금보다 훨씬 싼 값에 집을 또 살 수 있는 여건이 된다.

투자에는 책임이 따른다. 큰 투자에 큰 책임이 따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게 자본주의의 룰이다. 섣불리 H를 비난하고 C를 동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들의 추락에도 빈부 격차는 뚜렷했다. 같은 영끌 투자에도 타고난 ‘수저’에 따라 쉽게 일어날 수도, 일어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김범수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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