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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누구를 위한 기밀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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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24 23:08:17 수정 : 2022-10-24 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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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투명성 제고와 알권리 보장을 위해서 관련 법령 및 중재판정부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사건 정보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8월31일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사이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 결과를 설명하며 이렇게 밝혔다. 판정문을 비롯해 정부가 판정부에 제출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다만 ‘법령 및 판정부가 허락하는 범위 내’라는 단서를 달았다. 판정 결과와 함께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ISDS 사건 중재판정부가 절차명령을 발령해 당사자인 정부와 론스타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만 대외에 판정문을 공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런 판정부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종민 사회부 기자

과연 그럴까? ISDS 판정부의 명령은 사실 정부와 론스타 측이 사전에 판정문을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이어진 ISDS에서 지독한 기밀주의를 고수했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는 번번이 ‘국익’과 중재규칙을 내세워 거부했다. 론스타가 2012년 정식으로 중재를 제기하기 전 한국 정부에 전달한 중재의향서까지도 정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론스타 측이 돌연 자사 홈페이지에 이 문서를 게시하면서 비공개 원칙을 앞세웠던 정부가 무안해지는 일도 있었다.

지난 9월28일 400쪽이 넘는 판정문 전문이 드디어 공개됐지만 온전한 형태는 아니었다. 정부 설명대로 법령이 ‘허락하지 않는’ 정보는 검게 칠해진 상태였다. 법무부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무원을 제외한 사인의 개인정보와 외교기밀에 관한 사항을 가렸다고 설명했다. 반면 론스타 측은 최근 한 국내 언론에 “론스타는 전문 공개에 동의했지만, 한국 정부가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익명화를 주장했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판정문 전문 공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수천억원의 배상 책임을 지게 된 경위를 따지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국제통상 전문가이자 오랜 기간 론스타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온 송기호 변호사(법무법인 수륜아시아)는 판정문 전체가 공개돼 책임자를 가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사태의 주요 등장인물인 하나금융 등 관계자 이름이 공개되는 것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상규명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론스타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단순히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잘못이 없었는지 살펴 이와 유사한 혈세 유출을 막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 론스타의 ‘먹튀’ 1년 전, 정부는 ISDS 중재 제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론스타를 시작으로 외국계 사모펀드의 ISDS 제기는 이어졌고, 현재 진행 중인 6건의 ISDS의 청구액은 총 2조원에 달한다. 중재의향서를 보낸 경우만 6건이라 향후 ISDS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판정부로부터 청구서를 받은 정부는 판정 취소 신청을 검토한다며 배상을 미루고 있다. 취소 신청이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고, 지연이자와 중재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정부가 책임을 피하려 하지 않고 ‘국익’을 따지는 게 맞다면 투명한 정보공개가 우선이다.


이종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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