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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사과에 인색한, 유감스러운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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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04 22:40:26 수정 : 2022-11-04 22: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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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어머니의 여든세 번째 생신을 맞아 지방과 서울에 사는 가족들이 서울 한남동의 한 식당에 모였다. 손주와 증손주까지 참석 가능한 4대 20여명이 오랜만에 둘러앉아 이른 저녁을 즐겼다. 식사 도중 대식구가 이동해 편한 얘기를 나눌 만한 가까운 장소를 고민하다 이태원 부근을 제안했다. 그러자 바로 20∼30대 조카들이 말렸다. “삼촌, 오늘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라 가면 큰일 나요. 식구도 이렇게 많은데.” 아차 싶었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깜박했던 것이다. 축제 때마다 인파가 엄청 몰리는 곳 아닌가. 고민 끝에 ‘서울숲 공원’ 부근 카페로 자리를 옮겨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낸 뒤 오후 9시 반쯤 헤어졌다. 귀가해 잠자리에 들기 전 스마트폰을 봤다가 깜짝 놀랐다. ‘이태원 압사 사고’ 뉴스 속보가 잇따랐다. 바로 TV를 켜서 보니 이태원은 아수라장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구조 작업이 빨리 이뤄지고 사상자가 적기를 간절히 바랐다. 당시 거의 모든 국민이 같은 심정이었을 거다. 우리 가족이 그랬듯, 집안에 10∼20대 자녀가 있거나 서울에 일가친척이 사는 사람들은 모두 별일 없는지 안부 전화를 돌렸을 테고.

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이튿날 아침, 희생자가 엄청난 것으로 확인되자 마음이 아프면서도 당혹감이 들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 폭발·붕괴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길을 가다 무더기로 압사당하다니…’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 등 유족은 물론 가까운 이를 잃은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어떤 위로의 말로도, 그 무엇으로도 위안이 될 수가 없을 터.

이강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그래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중앙·지방정부 당국자들은 대참사가 벌어진 것에 우선 유족과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해야 했다. 당사자들의 법적 책임 여부야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가려져야 되겠지만 그 누구도 도의적 책임에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송한 마음으로 사과부터 하고 사고 수습과 원인 규명, 책임자 문책, 재발 방지책 마련 등에 최선을 다하는 게 도리이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주는 자세 아닌가.

그러기는커녕 책임 회피성 발언이나 늑장 사과로 유족과 국민을 실망시키고 화를 돋웠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발생 사흘 만인 지난 1일에야 대국민 사과 입장을 밝혔다. 여론이 악화한 데다 참사 발생 전 사고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112신고가 잇따랐음에도 경찰이 안일하게 대응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다.

특히 이 장관의 행태는 꼴불견이었다. 국민 안전을 책임지고 경찰까지 담당하는 주무부처의 수장임에도 그전까지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여론과 여야 정치권의 뭇매를 맞자 “국민들께서 염려하실 수도 있는 발언을 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31일)며 어물쩍 넘어갔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유감스럽다’의 뜻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러운 느낌이 남아 있는 듯하다’고 돼 있다. 이런 인사를 장관으로 둔 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유감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은 뭐 좀 느끼는 바 없나.


이강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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