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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제도는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거문화다. 고려시대 때 목돈을 빌려주고 전답을 사용하는 전당제도가 조선시대로 넘어와 주택을 활용한 가사전당(家舍典當)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공식적 기록은 1910년 조선총독부 관습조사보고서에 나온다. 전세를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가옥 임대차 방식’이라며 “임차인이 일정 금액을 집 소유주에게 기탁해 별도의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집을 반환할 때 금액을 돌려받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전세는 도시인의 주거 형태로 각광받는다. 농촌 인구의 대거 유입으로 주택 수요가 늘면서 집값이 상승했지만 내 집 마련은 ‘그림의 떡’이었다. 전세는 집주인에겐 보증금을 활용한 재테크 수단을, 세입자에겐 주거안정을 제공했다. 우리 사회에서 월세→반전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한 것도 전세다. 그래도 월 렌트 개념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게 전세는 여전히 낯설다. “그런 큰돈을 2년간 모르는 이에게 맡길 수 있느냐”는 반응이 주류다. 보증금에 대한 기회비용만 빼면 사실상 ‘공짜’라는 것도 놀랍다.

박근혜정부 시절 저금리로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자 박 전 대통령은 “전세시대는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정부 때는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전셋값 급등으로 월세화가 가속화하면서 또다시 전세 종말론이 힘을 얻었다.

금리 급등·집값 하락 등과 맞물린 거래절벽이 또 전세 종말론을 소환했다. 수치상으로도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전세를 밀어낸 지 오래다. 국토교통부 주택 통계에서 월세 거래량은 50%를 훌쩍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낮은 역전세가 속출한다. 천안의 한 아파트 주인은 전세계약 조건으로 ‘샤넬 가방’을 내걸었다. 수천만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바꿔주거나 이사비·부동산 중개수수료까지 내주며 ‘세입자 모시기’에 나설 정도다. 전세가 하락분만큼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월세를 주는 ‘역월세’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대위변제한 건수도 올 들어 9월까지 3050건, 6466억원에 달한다. 이래도 저래도 집 없는 세입자의 삶이 고되고 서럽기는 마찬가지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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