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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오드리 헵번과 빈곤 포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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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17 23:12:38 수정 : 2022-11-17 23: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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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미소만 짓고 있어도 아름다운 배우는 많다. 하지만 스크린 밖에서도 존경받는 삶을 이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배우 가운데 오드리 헵번이 있다. ‘세기의 연인’으로 불렸지만 인형 같은 외모에 깡마른 체구가 퍽 가냘파 보였다. 메릴린 먼로 등 1950~60년대를 풍미했던 육체파 배우들 사이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낼 만큼 매력이 넘쳤다.

오드리 헵번은 10살이 되던 해 제2차 세계대전과 마주했다. 이후 전쟁 난민으로 떠돌았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때 그녀를 구해 준 것이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전신인 국제구호기금이었다. 훗날 그녀가 유니세프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이다. 영화계 은퇴 이후 1993년 사망 직전까지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운동과 자선활동에 전념했다. ‘가장 위대한 여배우’로 기억되는 이유다.

그런 그녀가 난데없이 한국 정치판에 소환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의 현지 행보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여사가 배우자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를 했다며 야단법석이다. 대통령실이 김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 현지 의료원을 찾아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소년을 안고 있는 사진을 공개한 것을 두고, 1992년 소말리아 유니세프 급식센터를 찾은 오드리 헵번이 영양실조 어린이를 안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오드리 헵번은 인생 자체로 많은 이들에게 좋은 교과서다. 대통령 부인이 그녀를 따라 하거나 설사 ‘오마주’ 했다손 치더라도 뭐 그리 손가락질받을 일인가 싶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김 여사의 행보를 가리켜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비판했다. 빈곤 포르노는 모금 유도를 위해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이나 사진 등을 말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인식하는 ‘포르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다수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정치인으로 할 말은 아니라며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정치인들 품위가 시정잡배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길 바라서일 거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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