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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장갑의 철 주먹.’ 미국 정가에서 권력서열 3위이자 첫 여성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에게 따라붙는 별명이다. 그는 30여년에 걸친 의정 생활에서 원색계열의 화려한 의상과 아르마니 등 명품을 즐겼는데 패션에 ‘핑크는 괴롭힘 방지, 흰색은 여성참정권’처럼 진보적 메시지를 담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여성에 관한 한 한 치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그의 전투력은 극우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가장 빛을 발했다. 2018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이 57억달러의 예산을 들여 멕시코 국경장벽을 건설하려 하자 그는 “단 1달러도 줄 수 없다”며 버텼다. 결국 장벽 예산을 무산시킨 채 35일간의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를 끝냈다. 당시 미 언론들은 “트럼프의 시도를 봉쇄한 철의 여인”이라고 칭했다. 그해 말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켜 상원에 넘겼다. 2020년 2월 트럼프가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끝내자 연설문을 찢는 결기를 보여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중국과도 악연이 깊다. 하원의원 시절이던 1991년 9월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희생자 추모 시위를 감행했다가 구금당했다. 그는 장쩌민 주석을 서슴없이 폭군이라 불렀고 티베트 독립운동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접견, 베이징올림픽 외교보이콧, 홍콩인권민주화법안 가결 등 반중행보를 이어갔다. 지난 8월에는 미 하원의장으로는 25년 만에 대만을 전격 방문해 양안갈등에 불을 댕겼다. 1997년 북한을 방문해 주민들의 참상을 보곤 세습독재체제를 강력 비판했다.

펠로시가 그제 민주당 지도부에서 물러나 평의원으로 백의종군한다고 선언했다. 하원의장만 네 번째 지냈고 민주당 텃밭인 샌프란시스코에서 19차례나 당선됐다. 그는 평소 “잘 싸우기만 하는 정치인은 많다. 하지만 유권자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런 소신은 오랜 의정활동에 투영돼 있다. 아직 공과를 평가하긴 이르지만 펠로시만큼 미 정치와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한 여성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시도 때도 없이 소모적인 정쟁과 막말로 허송세월하는 국내 정치판을 보노라면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과감한 결단력이 마냥 부럽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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