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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60여년 이어온 美 ‘소수인종 입학우대'… 이번엔 ‘위헌' 나올까

입력 : 2022-11-22 09:00:00 수정 : 2022-11-21 2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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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적극적 우대 조치의 종말 (2)

흑인·히스패닉계 교육평등 위해 추진
“백인들 역차별”… 두 차례 위헌 소송
법원 “쿼터제·가산점 자동배점만 위배”
적극적 우대조치는 그대로 유지해와

반대 대법관들 “쿼터제 분명히 존재”
현 대법원 토머스 등 보수성향 인사
새 판결 앞두고 ‘입김’ 작용할 가능성

지난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의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는 미국 노예 제도와 인종 차별의 역사를 수정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노예 제도 폐지 이후로도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인종을 분리하는 정책을 묵인해온 미국은 흑인의 인권 요구에 밀려 적극적 평등 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 핵심에는 교육 기회의 평등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 교육의 경우는 단순히 모든 인종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워낙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한 환경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성적만으로 ‘공정한’ 경쟁을 한다면 명목상의 평등일 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불평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의대에 불합격한 앨런 바키는 자신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았다며 불합격 무효 소송을 냈고, 1978년 연방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를 수정하기 위해 각 대학은 적극적 우대 조치를 통해 비백인 학생을 입학시키려고 노력했고,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 의대는 신입생 100명 중 16명을 소수 인종 학생에게 할당했다. 그 결과 ‘소수자 특별 전형’으로 들어오는 학생은 백인 학생(평균 3.49)보다 낮은 학점(평균 2.88)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백인 학생이면서 3.46 학점으로 탈락한 앨런 바키는 자신이 수정헌법 14조에 보장된 “동등한 보호”의 권리를 침해당했을 뿐 아니라, 1964년에 제정된 민권법이 보장한 권리(“인종, 피부색을 근거로 차별받지 않는다”)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바키의 소송은 항소를 거듭해서 1978년에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며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대법원에 올라가는 소송이 대부분 그렇지만 아주 난감한 경우였다. 소수 인종 학생이 받는 차별을 해소하려는 학교나 이 때문에 역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학생 모두 ‘인종 차별’이라는 같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여기에서 ‘솔로몬의 판결’처럼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대학교에서 입학 결정에 적극적 우대 조치를 도입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지만, 이를 적용할 때 소수 인종 학생을 “몇 퍼센트” 선발하는 식으로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권리에 위배된다는 판결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적극적 우대 조치도 지키고, 바키 학생의 입학도 허가되는 ‘윈윈’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교묘한 책임 회피이기도 하다. 문제의 핵심은 소수 인종을 적극적으로 우대하기 위해서 입학 정원이라는 제한된 자원의 배분에서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인종별 쿼터제로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애매한 판결로 피해 갔기 때문이다. 즉, 바키 학생의 문제는 해결했을지 모르지만 추후에 다시 불이 붙을 수밖에 없는 이슈에 불씨를 남겨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2003년에 현실화한다. 이번에는 중부의 미시간대학교가 두 개의 소송에 걸려 대법원까지 올라온 사건이다. 첫 번째는 미시간대 법학대학원에 지원한 바버라 그루터라는 백인 여학생의 소송이었다. 그루터는 학부에서 3.8의 높은 학점을 받았고 법학대학원 입학시험(LSAT)에서 161점을 받았지만 불합격했고, 자신보다 점수가 낮은 흑인, 히스패닉 등의 소수 인종 학생은 합격한 것을 두고 부당하다며 소송을 건 것이다.

미시간대 법과대학원은 소수 인종 학생이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에 도달하는 것을 입학 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우리말로는 종종 ‘결정적 다수’로 번역되는 이 표현은 원래 물리학에서 ‘핵분열 연쇄 반응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의 질량’을 의미하는데,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숫자를 의미한다. 이 학교에서는 소수 인종 학생이 입학해서 공부할 때 백인으로 가득한 환경에서 고립되지 않고 학업을 이어나갈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크리티컬 매스를 내세웠다. 그런데 그루터는 이런 학교의 정책이 헌법이 보장하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낸 것이다.

여기에서 대법원은 5대 4로 학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다. 그 근거로 미시간대 법학대학원이 특정 인종 학생에게 자동적으로 가산점을 주거나 하지 않았고, 각 지원자가 고도로 개별적인 평가를 거쳐 선발되었음이 확인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연방대법원은 바키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적극적 우대 조치는 합헌이라는 두 개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법원의 이런 판결이 적극적 우대 조치의 축소와 폐지를 가져올 전조라고 생각하고 강하게 항의했다. 그들의 우려는 틀리지 않았다.

이는 이 대학교가 동시에 걸린 또 다른 소송과 대비된다. 제니퍼 그래츠와 패트릭 하마커라는 두 명의 고등학생은 미시간대 학부에 지원했지만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미시간대가 소수 인종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이들 지원자에게는 추가점을 자동 배정하는 기계적인 적극적 우대 조치 정책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정책이 수정헌법 14조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1978년 바키 판결 이후 25년 만에 나온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또 한 번 난감한 결정을 피했다. 바키 판결에서 쿼터제만 위헌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자동적인 가산점만 위헌이라고 판결하고 적극적 우대 조치 자체는 합헌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난감한 결정을 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판결문에 드러난 고민 때문이다. “앞으로 25년 후에는 오늘날처럼 인종에 따른 선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라는 대법관의 말은 이 결정이 위헌의 소지가 분명함에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즉, 풀기 힘든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다.

대법관 다섯 명이 내린 이 결정에 반대한 대법관들은 반대 의견을 통해 아무리 미시간대가 지원자에 대한 개별적인 심사를 했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 입학한 학생의 인종적 통계를 보면 분명히 쿼터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헌법은 지금이나 25년 후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토머스 대법관과 같은 주장을 법조계에서는 사법적 원전주의(judicial originalism)라 부른다. 헌법이 제정되었을 때의 의미와 목적에 충실해야 하며, 오늘날 사회의 변화된 규범이나 법관의 의견이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태도다.

2003년 토머스 대법관이 내세운 이런 반대 의견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2022년에도 여전히 대법원에 남아서 대법원 전체를 보수적인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토머스 대법관은 지난 5월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을 때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에 그치지 않고 과거 대법원이 내린 진보적인 판결을 모두 다시 심사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내놓았다. 조만간 나오게 될 대학교의 적극적 우대 조치에 대한 새로운 대법원 판결에서 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게 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한 사람의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에드워드 블룸이라는 변호사다. 블룸은 원래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던 사람인데 1990년,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민주당 하원의원이 공화당의 경쟁 후보 없이 단독 출마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나서서 겨뤄보겠다는 생각에 출마했다가 패했다. 그런데 자신의 패인을 살펴보다가 미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때의 경험이 그를 보수의 투사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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